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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중동의 북한… 엘시시 대통령, 파라오가 되려는가”

입력
2016.06.1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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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무바라크 축출 3년만에 쿠데타로 군부 정권 회귀

캠퍼스 곳곳엔 비밀경찰

생사 알 수 없는 실종자들

한편에선 “군부가 경제 살릴 것” 기대 목소리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근처의 무하마드 마흐무드 골목에 2011년 이집트 혁명 희생자를 추모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근처의 무하마드 마흐무드 골목에 2011년 이집트 혁명 희생자를 추모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지난달 18일 찾은 이집트 명문 카이로대. 청바지에 백팩 차림, 스마트폰을 들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한국의 여느 대학처럼 익숙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의견을 묻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한 학생은 주위를 둘러보며 “캠퍼스 전역에 비밀경찰이 쫙 깔렸다”며 “정치 얘기를 잘못하면 잡혀갈 수 있다”고 두려워했다. 다른 학생은 작은 목소리로 “시시(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는 도둑놈에 날강도”라며 “다들 이렇게 생각하지만 살기 위해선 침묵해야 한다”고 속삭였다.

이집트 사회는 한국의 1980년대 계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랍의 봄 기운을 타고 30년 독재 유산인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몰아냈지만 혼란을 틈타 군부 세력이 재집권한 모습이 한국과 판박이였다. 카이로대 운동권 학생인 하마드 샤벤(24)은 “학생들은 군부정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민주화를 무력화한 신군부의 등장

2011년 이집트 혁명을 통해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축출한 이집트는 짧은 민주화의 봄을 거친 뒤 2013년 엘시시 군부정권으로 회귀했다. 군부는 반대 세력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공안 정국’을 조성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만난 인권운동가, 지식인들은 “이집트는 현재 중동의 북한”이라며 “엘시시 대통령은 반대파를 모두 숙청해 현대의 파라오가 되려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집트 민주화의 불꽃은 불과 3년 만에 사그라졌다. 무바라크가 쓰러진 다음해인 2012년 이슬람단체 ‘무슬림형제단’의 지도자 무함마드 무르시가 첫 민선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이슬람율법(샤리아)의 시행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는 무슬림형제단은 성급하게 이집트의 이슬람화를 추구했다. 이듬해 약 100만명의 시민들이 무르시의 퇴진을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군부가 돌연 ‘시민들을 지지한다’는 명목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무르시를 축출한 국방장관 압델 파타 엘시시는 2014년 ‘형식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올랐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민주주의를 군부에 가져다 바친 셈이었다.

군부의 반대파 숙청은 거침없이 진행됐다. 무르시 대통령이 축출된 2013년 8월 카이로 도심에서는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군부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 약 1,300명의 민간인을 거리에서 학살했다. 이집트 법원은 전국 곳곳에서 잡아들인 무르시 지지자 1,200여명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종교, 민주화 세력을 숙청한 군부는 학생회, 시민운동가, 기자도 속속 잡아들이고 있다.

라밥 엘 마흐디 이집트 아메리칸카이로대(AUC) 사회학과 교수는 “이집트혁명 이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는 또 다른 혁명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며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무바라크 보다 잔혹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권단체 ‘이집트자유와권리위원회(ECRF)’의 모하메드 로프티(38) 사무국장은 “이집트 대부분의 신문ㆍ방송이 군부의 나팔수 노릇을 하고 있다”며 “엘시시는 이집트를 중동의 북한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무바라크를 능가하는 신군부의 탄압

이브라힘 메트왈리 변호사의 아들은 3년째 실종된 상태다. 그의 아들은 2013년 8월 군부정권 출현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 한 뒤 사라졌다. 이브라힘은 경찰서와 병원, 심지어 시위를 하다가 사망한 이들의 시체더미를 뒤지면 아들의 얼굴을 찾았다. 한 목격자가 “집으로 향하던 길에 누군가에 의해 납치됐다”고 전했다. 이브라힘은 “비밀경찰이 끌고 갔다고 생각한다”며 “아줄리(정치범 수용소)에서 아들을 봤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제발 살아만 있기를 바란다”고 울먹였다.

이브라힘을 만나는 과정 자체가 한편의 첩보드라마였다. 집도 없이 떠돌고 있는 그를 만난 것은 카이로변호사협회 뒷골목이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가족들을 모아 ‘실종자단체’를 구성했다는 그는 “실종자들은 어떤 통보나 절차도 없이 납치된다”며 “최소한 생사라도 알고 싶은 게 가족들의 심정”이라고 말했다. ECRF는 지난해 8~11월 사이에 실종된 사람이 34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는 지난해 12월 인권보고서에서 “이집트 시민단체들은 정치적 이유로 연행된 인원이 4만1,000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도 안전하지 않다. 지난 1월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 과정으로 카이로에서 노동문제를 연구하던 이탈리아 청년 줄리오 레제니(28)가 돌연 실종됐다. 일주일 후 거리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그의 온몸에는 고문 흔적이 선명했다. 이집트 시민 단체와 이탈리아 정부는 “경찰의 고문 자국”이라며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교통사고’라던 이집트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판이 강해지자 ‘테러범의 소행’이라고 번복했다. 현재 이집트와 이탈리아의 관계는 단교 직전까지 악화됐다. 이집트 주재 한국정부기관 관계자는 “정권을 건드리면 외국인도 가만 두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귀뜸했다.

군부정권을 향해 양분된 여론

아이러니하게도 이집트 사회에는 ‘군부정권이 이집트를 안정시키고 경제를 부흥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카이로 도심에서 만난 대학생 아미나 자이델라인(22)은 “민주화혁명 후 매일 거리에서 시위가 벌어지고 밤마다 총성이 들려와 두려움에 떨었던 시간을 생각하면 이제는 누군가 사회를 안정시켰으면 좋겠다”면서 서슴없이 알시시를 추앙했다.

무바라크 정권 퇴진 이후 이라크까지 번진 테러도 군부의 입김을 강화하는 요인이다. 군부가 이슬람성향의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후 극단주의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보복성 테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집트 최대정당인 자유이집트당(FEP) 출신 이메드 개드 국회의원은 “군대가 나라를 안정시키지 않았다면 이집트는 내전에 휩싸이거나 IS에 장악돼 리비아나 시리아처럼 됐을 것”이라며 “9,000만명의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는 군대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집트는 민주화 혁명 이후 혹독한 반동의 시간을 지내고 있었다. 에이미 홈즈 AUC 사회학과 교수는 “혁명 이후 극도의 혼란상 때문에 국민들은 지치고 무기력해졌고 심지어 군부정권의 인권 탄압에도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브라힘 변호사는 “이집트 스스로 내부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라며 “국제사회에 이집트의 상황을 전달해 달라”고 호소했다.

카이로(이집트)=글ㆍ사진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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