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최고 스태프를 꼽을 때마다 그의 이름이 종종 언급된다. 작품들 면면만 봐도 영화계에서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지난해 1,000만 관객을 모으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국제시장’과 ‘암살’이 최근의 결과물이다.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 ‘달콤한 인생’ ‘괴물’ ‘마더’ ‘변호인’ 등 완성도 높은 흥행작에 그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충무로가 오래 전 인정한 실력은 최근 해외에서도 공인 받았다. 지난달 열린 제69회 칸영화제에서 ‘아가씨’로 벌컨상을 수상하며 류성희(48) 영화 미술감독의 재능이 새삼 부각됐다.
벌컨상은 촬영감독과 미술감독 의상감독 등 기술 스태프에게 주어지는 칸영화제의 번외 특별상으로 류 감독은 한국인 최초의 수상자다. 최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류 감독은 “존경하는 해외 영화인들이 받았던 상이라 아직은 수상 사실이 실감 나지 않고 제 이름과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국내 미술감독 중 선구적인 인물로 꼽힌다. 미술감독은 세트와 소품, 의상 등 영화의 시각적 요소를 다루는 분야를 전담한다. 영화감독과 영화의 전반적인 이미지를 상의하고 결정하는 자리라 할 수 있다. 홍익대에서 도예를 전공한 류 감독은 1990년대 중반 미국 유학 길에 오른 뒤에야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언어과정을 밟던 중 미국영화연구소(AFI)의 영화 스태프 양성과정을 알게 된 뒤 지원했다. “한국영화가 방화라는 명칭으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일하다 (과로로) 입 돌아가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척박한 당시 한국영화계에선 일할 생각이 없어” AFI를 졸업한 뒤 1년 반 가량 동안 미국 영화 현장에서 일했다. 정상급 미술감독이라는 꿈을 키우며 미국 생활을 견뎌내던 류 감독은 어느 날 왕자웨이 감독의 홍콩영화 ‘동사서독’을 보고 귀국을 결심했다. 훗날 ‘화양연화’로 벌컨상을 공동수상한 장수핑 미술감독과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이 참여한 무협영화였다.
“서부극 속 조그만 바를 만드는 작업을 마친 뒤 집에 들어와 영화를 보고선 눈물을 흘렸어요. 한 지역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영화적 전통은 공부를 한다고 아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게 조그만 재주라도 있다면 아시아나 한국영화에 쏟아 붓자고 결심했어요. 2주 만에 모든 걸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에 돌아왔으나 류 감독의 작업 영역을 충무로는 낯설어 했고 일거리도 없었다. “촬영 전공을 하지 않은 걸 크게 후회할 정도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했다. 직접 만든 명함을 영화사에 돌리며 이름을 알렸다. “미술감독의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 ‘쟤 뭐지?’라는 반응이 돌아오곤 했다”고 류 감독은 돌아봤다. 폴란드 유학파인 송일곤 감독의 장편데뷔작 ‘꽃잎’으로 첫 일감을 따냈고, ‘피도 눈물도 없이’의 미술감독을 맡으며 자리를 잡아갔다.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최동훈 류승완 윤제균 등 충무로의 대표 감독 등과 작업하며 실력을 인정 받았다. 류 감독은 “주요 감독들과 중요한 작품들을 하며 영감도 많이 받았고 의욕도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류 감독은 벌컨상을 안겨준 ‘아가씨’에 대해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설렘이 컸다”고 말했다. 왜색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 “걱정을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암살’은 친일파와 독립군이 나오니 대립 구도가 선명한데 ‘아가씨’는 외관상 일본 색채만 강조돼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류 감독이 박찬욱 감독, 여려 스태프와 빚어낸 ‘아가씨’ 속 장면들은 탐미적이다. 서양과 일본 건축양식이 혼합된 건물 외관, 거대한 서재와 실내 일본 정원 등이 눈길을 잡는다.
“귀국한 뒤 정말 입이 돌아갈 정도로 열심히 일해 왔다”는 류 감독은 이제 스스로 새 출발선에 서고자 한다. “제가 이제 경험이 쌓였으니 조합이든 회사든 조직을 만들어 재능 있는 후배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소속감을 가지며 지속적으로 일해 전문가들이 양성 될 수 있는 모임을 만드는 것에 요즘 관심이 많습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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