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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차별대책이라는 이름의 차별

입력
2016.06.0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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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시민들의 불안하고 위험한 일상을 드러내 준 사건이 연이으면서 당국도 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강남의 한 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이 조현병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찰은 정신장애인에 대한 강제 행정입원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고, 교육청은 도서 지역에서 일어난 교사 성폭행 사건과 관련해서는 앞으로 여성 교사를 도서 지역이나 산간벽지에 신규로 발령 내지 않는 방안을 협의할 계획을 밝혔다.

그런데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대책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나온 대책들은 그 자체로 여성뿐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해 정부는 정신장애인을 문제로 지목했다. 하지만 이는 비정신장애인과 비교하여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이 낮고 이미 한국의 강제 행정입원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높다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에서 정신장애인은 시민 인권에 대한 위협이라기보다는 그들 자신이 일상적으로 인권침해와 물리적 위험 속에 놓여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을 감금하고 폭행했던 형제복지원 사건은 제대로 된 처벌은커녕 공권력의 조직적 은폐 속에서 30년이 되도록 여태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엄청난 바가지를 씌운 미장원, 장애인을 구타ㆍ갈취하고 성적으로 모욕 준 사건이 모두 바로 지난 며칠 사이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고 보면, 정신장애인은 지금 억압이 아닌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임이 분명해진다.

여성 교사의 경우에도 대책 자체가 또 다른 차별인 사정이 비슷하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인터뷰하면서 여성 초임 교사의 오지 발령을 금지하는 동시에 어느 한 성의 비율이 70%를 넘지 못하게 하는 법안, 결국 지금 현실에서는 여성 교사 수를 제한하는 법률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은 성폭력의 문제가 마치 여성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생긴 듯 접근하는 문제점을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이유로 이들 지역에서 근무하기를 원하고 할 수밖에 없는 여성 교사들의 부임 자체를 무조건 제한하겠다는 것은 여성의 노동권과 선택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대책이라고 나오는 것마다 그 자체가 또 다른 차별이 되는 현실의 근저에는 한마디로 공적인 삶에 대한 몰이해가 놓여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공적인 장이란 있는 차이를 무시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삶의 조건들에 놓여 있으며 생각과 처지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는 개인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의 차이를 인정받으면서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해야 하는 영역이다. 어느 한 사회구성원이 여성의 몸을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혹은 장애 여부 때문에 공적인 삶인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이나 사회적 노동에서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어야 하며, 그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공공의 역할이다.

사실 공적인 삶에서 배제를 가져오고 차별을 낳는 것은 당사자 아닌 사람들 보기에 사소한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승강기 없는 지하철역, 턱 많은 도로, 안심하고 갈 수 있는 화장실, 생리대나 피임약 같은 사안들은 많은 시민이 공적인 장에 실제 참가하려 할 때 넘기 어려운 장벽이다. 이제까지 여성 교사나 간호사, 공무원들이 허술한 관사가 위험하다며 거듭 문제를 제기했을 때에도, 아무리 어떤 직종에서는 험지 근무를 여성들이 도맡고 있건 말건 당국의 눈에 이는 여성들의 특수하고 사소한 문제로 보였을 것이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사건 터질 때마다 단 며칠도 숙고하지 않고 내놓는 갑작스러운 대책이 아니라 차별로 이어지는 일상 속의 기제들을 섬세하게 살피고 제거하는 일인 것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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