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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단열에 대하여

입력
2016.06.0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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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부터 알러지성 비염이 슬슬 생겨서는 중증환자가 되어버렸다. 내 알러지의 원인은 먼지도 진드기도 아닌, 찬 공기와 바람이다. 몸 내외부의 온도 차가 커지면 그걸 조절하지 못해 몸이 으슬으슬, 콧물이 주룩주룩한다. 공사현장을 다니는 내겐 먼지 알러지가 아닌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지만, 요즘처럼 더위가 막무가내일 때 시원하게 에어컨 한번 쐬지 못하고 바람 닿지 않는 구석으로 피하는 일이 다반사다. 여기저기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 때면 도처에 지뢰가 깔린 전쟁터를 지나가는 심정이 되곤 한다. 환절기나 겨울은 말할 것도 없다. 남들과 다른 온도 기준을 가진 나는 심지어 아내와 별거 아닌 별거를 해야 할 상황도 생긴다. 각자 편한 잠자리에서 숙면할 권리는 있어야 하므로.

리모델링하는 주택의 건축주가 “이 창을 쓰면 따뜻할까요”라고 질문했을 때 선뜻 의견을 내세우지 못한 것도 알러지로 인한 고생이 한몫했다. 따뜻함이란 상대적이지 않은가. 내겐 적당한 온도지만 상대방은 춥거나 더울 수 있다. 온도에 몹시 예민해져 있는 까닭에 확신에 찬 어조로 답변하지 못하고, “법적 창문의 열관류율이 2.1인데 이 집의 창은 1.6이니 법적 기준보다 더 단열이 잘됩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단열에 대한 법규가 계속 강화돼서 법적 요건에 맞춰 짓기만 해도 충분히 따뜻한 집이 된다. “전보다는 훨씬 따뜻해질 겁니다”라는 대답은 확실히 할 수 있었다.

이 집은 30년 된 주택인데, 부분적으로 철거하고 보니 벽돌 사이에 1㎝짜리 스티로폼만 들어 있어서 깜짝 놀랐다. 그 집에서 작년까지 할머니 한 분이 살았다. 추위에 대한 할머니의 내공은 달인 수준이었을 것이다. 한창 리모델링 중인 평창동 빌라의 경우 아예 단열재가 없었다. 추위를 어떻게 견뎠냐는 질문에 건축주 가족은 “뭐, 조금 춥긴 했어도 지낼 만했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에 내가 살았던 단층주택도 단열재가 없었다. 난방이 안 되던 마루는 겨울이면 얼음이 얼 정도로 추웠다. 아버지와 함께 1㎝도 안 되는 단열재를 벽에 붙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 그때는 알러지성 비염 따윈 모르던 팔팔한 시절이었는데.

단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등장한 ‘패시브하우스’는 단열 성능에 대해서 만큼은 ‘끝판왕’이다. 패시브하우스는 일반적인 기준보다 2, 3배 단열재가 더 들어가고 그 외에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쾌적한 생활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주택이다. 집을 짓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고려해볼 만하지만 일반적인 주택보다 건축비가 더 들어간다.

알러지성 비염이 심한 날은 콧물 때문에 괴로울 지경이 된다. 나는 이를 ‘몸의 결로’라고 부르곤 한다. ‘결로’는 건물 내외부의 온도 차에 의해서 내부 벽에 물방울이 생기고 심하면 비가 새는 것처럼 흘러내리는 현상이다. 법적 기준이 강화되면서 주택의 단열 성능은 과거보다 훨씬 좋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로의 위험은 증가한다. 단열이 안되는 집은 내부가 추우므로 결로가 잘 생기지 않는 반면, 단열 성능이 좋은 집은 내외부의 온도 차가 커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단열재가 부실한 부분은 결로가 생길 수 있다. 알러지 환자가 콧물 때문에 정신이 어질어질하듯, 건물의 결로는 건축주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비도 안 오는데 물이 흘러 벽지를 적시고 곰팡이를 피우니 새집을 지어 막 이사한 사람에게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결로는 단열재를 꼼꼼히 시공한다면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추운 걸 참지 못하는 거주자들이 겨우내 환기 한번 안 하고 집 안에서 빨래를 말린다면 절대로 막지 못한다. 결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환기이기 때문이다. 좋은 단열재와 성능 좋은 창문만큼 환기를 자주 해서 생활공간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습관을 중요하다. 좋은 습관은 최고의 건축재료다.

정구원 트임건축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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