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재도약의 모범 삼을 만
지난 달 25일 오전 찾은 스웨덴 스톡홀름 도심에 위치한 국립기술혁신청(VINNOVA). 청사 입구는 출입증을 받으려는 이들로 북적댔다. 20대 남성은 “지원비를 받기 위해 창업 아이디어를 들고 찾아왔다”며 서류를 흔들어 보였고, 대기업 직원이라는 한 남성은 “정부에서 추진 중인 거대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며 연구 계획서를 가져 왔다”고 했다. 기술혁신청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인 연구ㆍ개발(R&D) 진행 상황을 점검 받기 위해 왔다는 대학연구소 관계자들도 있었다. 이곳이 요즘 스웨덴 공공기관 중 가장 활기가 넘치고 바쁜 곳이라는 얘기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호아킴 아펠키스트 국제협력국장은 이들을 가리키며 “참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스웨덴의 산업 혁신가들”이라며 “국립기술혁신청은 이들의 미래를 향한 도전이 매일매일 일상처럼 이뤄지는 곳”이라고 말했다. 한때 ‘복지 모델’의 전범(典範)으로 꼽혔던 나라, 그래서 변화와는 거리가 있었던 나라 스웨덴은 이제 ‘혁신 모델’의 전범으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옆 나라 핀란드 수도 헬싱키 거리를 걷다 보면 ‘볼트(WOLT)’라는 상호가 새겨진 차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서른 살의 젊은 이(엘리아스 피에틸라)가 ‘음식 관련 산업의 디지털화’를 내세우며 설립한 이 회사는 음식 배달 스타트업(혁신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신생기업). 모바일 앱을 통해 음식을 주문하고 배달을 하거나, 음식점에 도착하기 전 메뉴를 맞춤형으로 선택 주문하는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놀라운 건, 이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이들이 줄을 잇는다는 점이다. 노키아 회장, 스카이프 창업자, 슈퍼셀 최고경영자(CEO) 등이 투자자로 참여하며 불과 1년 만에 1,400만달러(약 160억원)의 투자금을 끌어 모았다.
볼트는 자고 나면 1, 2곳씩 생겨나는 핀란드 스타트업 기업 중 하나일 뿐이다. 지난해에만 700곳 가량의 스타트업 기업이 새롭게 문을 여는 등 핀란드는 창업을 통한 산업 생태계 변화가 역동적이다. 노키아 몰락 이후 그 빈자리를 노리는 패기의 스타트업 기업들이 우후죽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정은주 코트라 헬싱키 무역관장은 “거목의 자리를 다수의 잔목이 채우고 있다”고 했다.
이웃나라 중국은 정보통신 기술을 전 산업에 융합시켜 새로운 경제발전 생태계를 창조한다는 이른바 ‘인터넷 플러스’를 국가전략으로 밀어붙이고 있고, 전통 제조업 강국 독일은 이제 혁신 제조업 최강이 되겠다며 ‘인더스트리 4.0’, 즉 4차 산업혁명으로 질주하는 중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지금껏 잘하던 일’을 과감히 포기하고 ‘앞으로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가는 구조조정과 산업개혁의 길을 걸어왔고, 또 걷고 있다. 거침없는 속도에도 큰 부작용 없이 내달릴 수 있는 건 ‘구조조정의 패배자’를 함께 끌어안고 있어서다. 해고를 당해도 전 직장 급여의 최소 70%를 보장해주고 전직 직업 교육을 제공(스웨덴, 핀란드)하거나 고용전환회사를 통해 전직과 이직의 기회(독일)를 준다.
지금 한국 경제 앞에 놓인 최대 숙제 역시 구조조정과 산업개혁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기업구조조정과 산업개혁은 우리 경제의 생존과 재도약을 위한 선택지 없는 과제"라고 했지만, 미래에 대한 청사진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한국일보는 창간 62주년을 맞아 한국보다 한 발 앞서 ‘가보지 않은 길’을 찾아 나선 나라들의 생생한 구조조정ㆍ산업개혁 현장을 둘러봤다. 앞서 간 국가들이 긴 고민과 진통 속에 찾아낸 해답은, 우리가 곧 맞이해야 할 상황에 대처하는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스톡홀름ㆍ헬싱키=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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