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6월 9일
세크리테리엇(Secretariat)은 ESPN 선정 20세기 북미의 가장 위대한 운동선수 100명 중 35위에 오른 경주마다.(1~3위는 마이클 조던, 베이브 루스, 무하마드 알리.) 1999년 10월 미국우정공사(USPS)가 발매한 33센트 우표에 얼굴이 실리고, 2007년 켄터키 주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처음 오른 (非)인간이었다. 1973년 6월 9일, 뉴욕 벨몬트파크에서 열린 벨몬트스테이크 경기에서 그의 ‘트리플 크라운’ 위업이 완성됐다.
세크리테리엇은 1970년 3월 30일 버지니아 주 메도 목장에서 태어났다. 북미 리딩사이어(leading Sireㆍ최고 종마)를 8회(1963~69, 1973)나 차지한 ‘볼드 룰러(Bold Ruler)’의 3번째 망아지. 어미 몸 밖으로 나온 지 20분 만에 일어나 걷고, 45분 만에 젖을 빨기 시작했다는 탄생 신화가 있다.
당시 명문 목장 중 하나였던 메도 목장은 경영난으로 매각을 저울질하던 중이었다. 거기 반나마 은퇴했던 60세의 조교사 루시엥 로린(Lucien Laurin)이 세크리테리엇의 자태와 가능성에 반해 가세하고…, 세크리테리엇은 데뷔 첫 해인 72년 ‘북미 올해의 말(연도 대표마)’로 선정됐다.
선친이 작고하면서 목장을 물려받은 딸 페니 체너리(Penny Chenery, 당시엔 페니 트위디)에게 시련이 닥쳤다. 상속세를 내려면 세크리테리엇을 팔아야 했지만, 선친이 꿈꾸던 ‘트리플 크라운’즉, 두 달 사이 열리는 캔터키-매릴랜드-벨몬트 더비 3관왕의 유일한 희망이 세크리테리엇이었다. 그가 택한 돌파구는 신디케이트 즉 소유권을 나눔으로써 운영권을 유지하는 형태였다. 단거리 가속력은 충분히 과시한 세크리테리엇에게 벨몬트스테이크의 2.4km 주로(走路)는 지구력을 검증 받는 마지막 승부처였고, 거기 목장과 여러 사람의 운명이 걸려 있었다.
1973년 오늘, 빅 레드(Big Red)라는 애칭으로 불린 세크리테리엇은 2위를 무려 31마신(1마신은 약 0.2초) 차이로 따돌리며 압승, 1948년 이후 25년 만의 첫 트리플 크라운의 주인공이 됐다. 그는 21전 16승(2착 3회, 3착 1회)으로 2년 연속 ‘올해의 말’이 된 뒤 은퇴했다.
랜덜 월러스의 2010년 영화 ‘세크리테리엇’에는, 하지만 사람 이야기가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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