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부실 지원 책임 물어…최종 결정자인 정부엔 추궁 없어
“책임질 몸통은 두고 꼬리만 자르는 꼴”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12조원의 자금이 국책은행에 투입되면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도 임직원의 임금반납, 인력감축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돌입한다. 공적부담으로 지원하는 만큼 국책은행도 부실 기업 지원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장군’(정부 및 청와대)이 ‘부하’(국책은행)에게만 패전 책임을 전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범정부부처가 내놓은 ‘기업 구조조정 추진계획’에는 산은, 수은에 인력ㆍ조직 축소, 임금삭감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 안이 포함됐다.
우선 산은은 2021년까지 현 정원(3,193명)의 10%인 319명을 감축해야 한다. 현재 9명인 부행장은 연말까지 8명으로 줄고, 82개인 지점도 2020년말까지 74개로 축소된다. 올해 1.3% 삭감된 경상경비는 내년에도 3% 추가 삭감된다. 임원들의 올해 연봉은 작년보다 5% 줄고, 내년에는 5% 추가 삭감된다. 전 직원은 올해 임금상승분을 반납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등 자회사나 투자회사에 대한 산은 출신들의 재취업도 금지된다.
수은 역시 정원(978명)의 5%인 49명을 2021년까지 감축해야 한다. 현재 10명인 부행장 자리도 2018년까지 2명 감축하며, 9개 본부가 7개 본부로 축소된다. 국내 지점 및 출장소 역시 올해 13개에서 2020년까지 9개로 줄인다. 올해 10% 삭감된 경비예산은 내년에도 추가로 3% 줄어든다. 올해 임원 연봉은 작년보다 5% 삭감되며, 내년에도 올해의 5%가 준다. 산은과 같이 모든 직원은 올해 임금상승분을 반납하며, 유관기관으로의 취업도 금지된다. 수은 관계자는 “반성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발표된 안을 보니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이들 국책은행이 조선ㆍ해운업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했으면서도 부실을 막지 못한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평가다. 그러나 정부와 청와대가 책임을 회피하면서 막후에서 국책은행을 좌지우지하는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향후의 구조조정도 정치 논리로 파행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법정관리로 보내야 할 기업들을 자율협약으로 방향을 틀고 산은, 수은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하라는 비정상적인 결정을 한 주체는 정부와 청와대”라며 “결정 구조는 그대론데 국책은행만 바꾸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꼬집었다. 정부의 책임론이 비등하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날 “2008년 미국은 구조조정 할 때 관여하는 사람 면책하는 법부터 만들었다”며 “그런 법을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사후 결과물만 놓고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은 좋은 평가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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