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1년 영국의 국가부채는 오랜 전쟁 탓에 통제불능 수준이었다. 영국 정부는 ‘남해(South Sea)’라는 회사를 만들어 국채를 떠넘겼다. 대신 남태평양 무역 독점권을 줬으나 해난사고 등으로 사업은 부진했다. 회사는 경영이 어려운데도 뒤를 봐주던 왕족에게 거액을 배당하는 등 주가조작에 나섰다. 1720년 1월 100파운드 수준이던 주가는 7개월 만에 1,000파운드를 넘어섰다. 하지만 회사 미래를 걱정하던 임직원들이 주식을 몰래 처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품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버블(Bubble)’이란 말이 이 때 생겼다.
▦ 5ㆍ16 쿠데타 1년 뒤인 1962년 5월 한국증시는 활화산이었다. 한달 거래대금이 증권거래소가 탄생한 1956년부터 6년간 거래대금 총액과 비슷했다. 당시 상장 종목은 주식회사였던 증권거래소와 한국전력 등 불과 12개. 작전세력의 주가 띄우기로 증권거래소 주가는 120배나 폭등했다. 5월 말 투자자들의 대납자금이 부족해진 거래소가 부도를 내면서 거품은 곧 꺼졌다. 주가조작으로 마련된 자금이 공화당 창당에 쓰였다는 의혹은 사실로 확인됐다. 미 국무부 보고서는 62년 증권파동을 ‘남해 버블사건 이후 최악’으로 평가했다.
▦ 증권파동으로 수백 억환의 한국은행 융자금이 사라졌으나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권력이 비리의 몸통이었기 때문이다. 주식범죄는 돈과 정보를 가진 자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그런 측면에서 권력형 범죄다. 진경준 검사장은 개미들이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 우량 비상장주식을 회사 돈을 빌려 매입한 뒤 120억원대 시세차익을 냈다. 어제 검찰에 소환된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은 자율협약(채권단 관리 하의 구조조정) 체결 사실을 미리 알고 주가 급락 전에 주식을 내다팔아 10억원대 손실을 피했다.
▦ 국가경제에 치명상을 입힌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관행은 한국사회에 부패구조와 권력형 범죄의 전통을 뿌리내렸다. 주식범죄는 천문학적 불로소득을 안겨주는 권력형 범죄이지만 처벌은 여전히 미약하다. 적발이 쉽지 않고 설령 기소돼도 실형선고 비율은 3분의 1에 그친다. 400만 명이 적용 대상인 김영란법이 시행돼 식사접대를 3만원으로 제한하면 부패가 근절될까.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묘하게 사익을 취하는 권력형 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한 도로아미타불일 것이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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