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은 미스코리아 출신이에요” “제 딸은 내조의 여왕입니다. 음식을 참 잘하고 배우 송윤아를 닮았죠”
딸 자랑 대회가 열린 것일까, 아니면 중매업체 고객들이 업소에서 떵떵거리며 내비치는 과도한 자식 사랑의 일면일까. 외모를 앞세우거나 재력을 내세워 맞선 볼 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습, 지난달 31일 방송된 SBS 파일럿 프로그램 ‘대타 맞선 프로그램-엄마야’(엄마야)의 한 장면이다.
맞선을 위해 카메라 앞에 선 남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저는 000매장 50여개를 운영하는 요식업체 CEO(최고경영자)입니다”라는 식의 자기 소개는 보통. 대기업 연구원이나 공중보건의라고 자신의 ‘신분’을 장모님 후보들에게 밝히며 맞선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과시한다.‘외모와 스펙이 남달라야 결혼할 수 있다’는 비뚤어진 시선이 반영된 프로그램이 지상파TV 전파를 타고 시청자들을 찾은 것이다.
2년 전 합숙촬영 도중 여성출연자가 숨지는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막을 내린 SBS ‘짝’이후 잠시 자취를 감췄던 일명 ‘짝짓기 예능’이 다시 기를 펼 조짐이다. 연예인들의 미팅 프로그램 MBN ‘사랑과 낭만의 해법-사랑해’(사랑해)가 전파를 타고 있고 ‘엄마야’가 방송된 데 이어 남녀 100명이 단체 미팅을 한다는 컨셉트의 JTBC ‘솔로워즈’가 내달 방송 예정이다.
‘짝짓기 예능’의 부활 조짐에 시청자들의 반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엄마가 딸 대신 맞선을 보고 신랑감을 정해준다는 ‘신개념 미팅’을 내세운 ‘엄마야’는 여지없이 비난의 화살을 맞았다. ‘조건에 맞는 남자’에 높은 점수를 준 엄마들이 찍어 둔 사윗감과 딸이 금세 사랑에 빠지기를 바란다는 설정이 환영 받기는 애초 기대하기 어려웠다.
IT업계 연구원 김주연(36)씨는 “역시 여자는 외모를, 남자는 스펙이 뛰어나야 ‘결혼시장’에서 통한다는 왜곡된 시선을 거르지 않고 보여줘 불편했다”고 말했다. 대학생 남승희(24)씨도 “전문직이거나 사업체를 운영하는 여성출연자가 있었는데 부각되지 않더라”며 “여전히 현모양처가 최고의 신붓감인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사랑해’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연예인들의 스스럼 없는 밀실데이트와 스킨십이 리얼리티를 표방하지만 “누가 봐도 연출된 화면이라 보기 부담스럽다”는 지적이 줄을 잇는다. ‘솔로워즈’는 방송 전부터 논란거리다. 평범한 사람들의 만남을 강조하는 이 프로그램은 출연 참가신청서에 키와 몸무게, 전공이 명시된 최종학력, 직업, 방송출연경력 등을 기재토록해 외향적 조건만을 강조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하루 동안 한 공간에서 제작진의 감시 하에 촬영된다는 점도 논란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이미 숱한 비난의 화살을 받았고 앞으로 더 큰 논란이 예상되는데도 짝짓기 예능이 방송가에서 다시 대접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가에서는 짝짓기 예능이 연출자(혹은 작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손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중문화평론가 김경남씨는 “일주일(‘짝’)이나 하루(‘솔로워즈’)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제작진이 완벽하게 개입해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짝짓기 예능이 주로 리얼리티를 표방하고 있기에 연출된 상황에 대한 제작진의 철저한 계산이 없으면 단기간에 촬영을 종료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특히 평범한 출연자를 상대로 했을 때 제작진의 개입이 더욱 수월해진다. 방송시스템을 잘 모르는 보통 출연자들은 연출진의 의사에 전적으로 의지해 촬영에 임하는 경향을 보여서다.
출연료 부담도 없고 짧은 시간 안에 제작을 완료할 수 있는 저비용 고효율의 비법이 이런 촬영 조건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김경남씨는 “결국 짝짓기 예능의 주인공은 출연자가 아닌 제작진”이라며 “압축된 영상에서 자극적인 화면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랑과 연애라는 인류 보편적 주제는 짝짓기 예능의 무기이기도 하다. 아무리 연출된 상황이고 거부감을 불러오는 내용일지라도 남녀노소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담길 수 밖에 없다. 짝짓기 예능은 욕하면서도 보는 프로그램인 셈이다.
‘솔로워즈’의 조승욱 책임프로듀서(CP)는 “연애 버라이어티는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통용되는 장르로서 매번 새롭게 변주해 나오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조 CP는 짝짓기 예능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 대해선 “리얼리티와 경쟁이 포함된 설정이라 스펙이나 외모 등이 프로그램에 반영될 수도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단면이라는 생각도 든다”며 “다만 그런 것들을 조장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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