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전담팀 3개월째 집중단속
216명 적발, 청소년 고용주 입건
“다른 공연 비방해 손님 빼앗아”
영세 소극장 “혜화역 광고판
한 달 300만원 비용 감당 못해”
“이 시간이면 거리마다 10여명의 호객꾼(삐끼)이 활동했는데 지금은 자취를 감췄습니다.”
8일 오후 1시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 앞. 대학로 소극장 호객행위 단속에 나선 혜화경찰서 대학로 클린팀 소속 임영준 경장은 주변을 둘러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출구를 나서면 3,4명의 호객꾼이 달라 붙어 “좋은 공연을 싸게 보여주겠다”며 억지로 시민들의 손목을 잡아 끄는 모습이 사라진 것이다. 임 경장은 “단속 이전에는 대학로 일대에서 대낮부터 50여명의 호객꾼이 활동했지만, 단속 강화 이후 관객이 몰리는 저녁 시간대에만 반짝 호객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 메카’ 서울 대학로의 거리 풍경이 싹 바뀌었다. 경쟁적인 호객행위로 불편 신고가 계속되고 공연 질서를 흐트린다는 항의가 이어지면서 경찰이 단속의 칼을 뽑아 든 결과다. 하지만 단속 대상인 영세 소극장 관계자들은 과도한 공권력 행사로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혜화서는 지난 3월부터 전담팀을 꾸려 대학로 호객행위 집중 단속에 나선 결과 78명을 즉결심판에 넘기고 127명에게 경범죄 범칙금을 부과했다고 8일 밝혔다. 또 미성년자들을 고용해 티켓판매 수수료를 주고 호객행위를 시킨 극단 대표 김모(53)씨 등 11명을 청소년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의 단속 강화 조치에 반응은 엇갈린다. 연극협회, 한국소극장협회 등에 속한 극장들은 반색하고 있다. 그간 일부 소극장들의 불법 호객행위로 인한 폐해가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호객 행위를 하는 소극장들은 대부분 협회 소속이 아니고, 예술성보다는 상업성이 강한 공연을 하며 손님을 끌어 모은다. 이들은 입장료를 부풀리거나 ‘A 공연은 매진됐으니 우리 공연을 보러 오라’, ‘다른 공연은 B급 배우나 연습생이 공연하니 볼 것 없다’는 식으로 영업을 방해하는가 하면, 심지어 가짜 연극 순위표를 만들어 거짓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임정혁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은 “호객행위를 일삼는 소극장들은 불법을 자행하는 것은 물론, 관객들의 선택권까지 빼앗아 공연시장 질서를 심각하게 교란했다”고 말했다.
반면 호객행위를 하는 소극장들의 입장은 정반대다. 불법 요소가 다소 있긴 해도 막대한 홍보비를 책정할 여유가 없는 소극장들은 호객행위 외에 자신들의 창작극을 관객들에게 알릴 길이 없다는 것이다. 단속 강화가 오히려 문화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논리다. 한 소극장 관계자는 “혜화역 광고판에 연극 광고를 걸려면 한 달에 300만원이 드는 데 같은 기간 공연을 계속해도 남는 이익은 많아야 700만원 정도”라며 “수지타산이 도저히 맞지 않는 상황에서 연극으로 먹고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호객행위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학로 연극공연의 평균 유료객석 점유율은 47.7%에 그칠 만큼 사정이 열악해 일부 소극장의 호객행위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학로 곳곳에 한국연극협회가 관리하는 문화게시판과 한국소극장협회가 설치한 홍보용 가로등 배너 등도 회원 극장 위주로 운영돼 불법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 하고 있다.
서울문화재단 관계자는 “정부의 연극인 지원이 아직까지 창작과정으로 한정돼 있고 마케팅이나 홍보 활성화 방안은 없어 극장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며 “입장권 판매를 위한 공동 창구를 확충하는 등 영세 소극장도 자생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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