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는 근사했고 연기도 제법이었다. 13세에 무대에 처음 올라 스물 문턱에 이미 별이 됐다. 20대는 거침이 없었다. ‘청춘 스케치’(1994)에 출연하며 1990년대 X세대를 대변했다. 프랑스 배우 줄리 델피와 함께 한 ‘비포 선라이즈’(1995)는 불멸의 청춘 영화가 됐다. 당장이라도 짐을 싸고 비행기에 몸을 실은 뒤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하면 운명적 만남이 이뤄질 것만 같은 영원한 환상을 그는 델피와 빚어냈다.
카메라 앞을 벗어나서도 재능은 곳곳에서 빛났다. 장편소설 ‘이토록 뜨거운’과 ‘웬즈데이’를 발표한 소설가이면서 2001년 ‘첼시 호텔’로 영화감독 데뷔식도 치렀다. 지난해엔 ‘보이후드’(2014)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각색상 후보에도 올랐으니 다재다능이라는 수식이 걸맞다.
하지만 그의 배우로서의 이력은 2000년대 초반쯤 멈춰 서있는 느낌이었다. ‘비포 선셋’(2004)과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2007)가 그의 존재를 새삼 확인케 했으나 눈에 띄는 출연작은 거의 없었다. 간혹 접하는 스크린 속 그의 모습은 예전과 달랐다. 이마를 깊게 파고든 주름이 청춘의 풋풋한 향을 대체했다. 장난기 어린 콧수염과 턱수염이 사라진 곳엔 삶에 찌든 거친 피부가 자리했다. 영화 ‘가타카’(1997)로 만나 결혼한 배우 우마 서먼과 이혼한 뒤 그의 주름은 더 깊어져 보였다. 젊은 시절 화려하게 피었다가 서른 무렵 급격히 시든 뭇 배우들의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 그의 얼굴이 다시 눈에 띄기 시작했다. ‘비포 미드나잇’(2013)에서부터 그의 모습은 달라 보였다. 대학생 시절 빈에서 만난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이혼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린 남자 제시는 스크린 밖 배우의 삶과 얼추 포개진다.
‘보이후드’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려낸 것이 명백해 보이는 이 영화에서 이선 호크(46)는 낭만적이고도 무책임한 아빠로 나온다. 어려서 부부가 됐고 살아가며 양육의 책임에 시달리는 젊은 남녀의 사연은 호크의 실제 부모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호크는 12년 동안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외모의 파노라마를 보여준다. 여전히 꿈꾸는 듯한 눈빛의 30대 초반 사내는 배가 불룩 나오고 더 이상 떠돌아 다닐 수 없는 현실에 굴복한 가장으로 변모한다. 영화는 의도치 않게 호크가 12년 사이 겪은 인생 부침을 그렇게 스크린에 투영한다.
9일 개봉하는 음악영화 ‘본 투 비 블루’는 배우 호크의 부활을 확연히 알린다. 마약과 성을 탐닉하며 제멋대로 살다 간 재즈 트럼펫 연주자 쳇 베이커(1929~1988)의 삶이 소진됐다 여겨졌던 호크의 재능을 되살렸다. 쾌락이 남긴 숙취와 고단한 삶의 흔적,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대가가 되고 싶었던 베이커의 욕망은 호크의 주름진 얼굴에 온전히 담긴다.
자신의 재능에 자만했다가 할리우드의 외면 속에 오랜 슬럼프를 겪었던 말런 브랜도(1924~2004)는 53세에 출연한 ’대부’(1977)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새롭게 알렸다. ‘본 투 비 블루’는 ‘대부’의 화려함은 지니지 않았으나, 호크의 귀환은 70년대 브랜도의 부활만큼 반갑다. 90년대 그와 청춘을 함께 했던 관객들이라면 더 환대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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