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 전민수/사진=kt
"벼랑 끝에 선 게 아니라, 그냥 벼랑 밑으로 떨어졌죠."
전민수(27·kt)가 길었던 지난 8년을 돌아봤다. 이제는 웃음을 지으며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여유도 생겼다. 먼 길을 돌아온 그 시간 속에서 그는 더 단단해졌다.
전민수는 요즘 kt 타선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다. 올 시즌 37경기에서 타율 0.319, 1홈런 14타점을 올리고 있다. 득점권에서는 타율 0.476로 더 잘 친다. 전민수는 "전력분석팀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다"며 "kt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만큼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팀 내 중심타자인 유한준과 김상현, 이진영 등이 연달아 이탈한 상황에서 전민수의 활약은 더 빛난다.
쉽게 오지 않는 기회를 잡아냈다. 그는 "그만큼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나"라며 웃음지었다. 프로 입단 9년 만에 찾아온 봄날이다. 덕수고 시절 이영민 타격상을 받은 그는 2008년 현대 2차 4라운드 27순위로 지명되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한 발을 내딛기가 힘들었다. 2년간 15경기 20타수 무안타만 기록한 뒤 2009년 말 경찰야구단에 입대했다. 제대 후에는 어깨 수술을 두 차례 했다. 야구가 생각처럼 풀리지 않으면서 전동수에서 전민수로 이름도 바꿨다. 하지만 2013년 11월 넥센에서 방출됐다. 전민수는 "사람들이 벼랑 끝에 몰렸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나. 하지만 난 완전히 끝이었다. 벼랑에서 떨어졌다. 지금 나는 죽었다 다시 살아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신고선수로 kt에 입단해 다시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전민수는 "주변에서 힘이 돼줬다. '포기하지 말자, 다시 한 번 해보자'고 힘을 준 사람들이 많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퓨처스(2군) 리그에서는 93경기에 나와 타율 0.395, 8홈런 46타점 7도루를 기록했다. 하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그는 늘 그랬듯, 묵묵히 참고 기다렸다. 전민수는 "2군에서 100경기 가깝게 뛰면서 장기 레이스를 간접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준비할 시간이 많았던 만큼, 야구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연구했다"고 말했다.
지난 4월16일 처음 1군에 올라올 때도 큰 목표는 없었다. 그는 "준비한 걸 보여주자는 생각만 했다"고 말했다. 4월22일 삼성전에서 1군 데뷔 후 처음으로 때려낸 안타는 가장 소중한 기억이다. 그는 "기다림에 대한 상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제는 더 큰 책임감이 생긴다. 전민수는 "우리 팀에는 나보다 어린 투수들이 많다. 동생들이 열심히 던져주는데 잘 못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타석에서 안타를 하나라도 더 쳐주고, 수비에서 한 점 더 막아주면서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힘든 시간을 함께 버텨냈던 동료들을 보며 더 힘을 낸다. 그는 "두산 김재환이나 넥센 (서)건창이, 롯데 김상호 등 유망주 소리를 들으면서 2군에서 같이 뛰었는데 지금 잘 하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그 친구들을 보면 '나도 한 번 해보자'는 자신감이 더 생긴다"고 말했다.
1군 등록 후 한 번도 엔트리에서 빠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전민수는 "이제 시작이다. 시즌 끝까지 (1군 구장인) 수원에서 뛰고 싶다"며 "12월이 궁금하다. 내가 올 시즌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그때 많이 웃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김주희 기자 juhee@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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