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본선을 앞두고 공화당이 적전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사실상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와 당 지도부를 위시한 주류 진영이 또다시 정면 충돌하면서 심각한 갈등상을 재연하고 있다. 당 지도부의 비판에 더해 ‘멕시코계 판사 공격’ 발언을 이유로 지지를 철회하는 상원의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그동안 좌충우돌형 ‘아웃사이더’ 트럼프를 마지못해 받아들였던 미국 공화당 지도부는 7일(현지시간) 트럼프의 멕시코계 연방판사 비판 발언을 작심하고 비판했다. 당 1인자인 폴 라이언(위스콘신) 하원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의 발언은) 교과서 정의 그대로 ‘인종차별주의적 발언’으로, 완전히 거부한다”면서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라이언 의장은 “뭔가 잘못된 말을 했을 때 성숙하고 책임 있게 대처하는 방법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동시에 “방어할 수 없는 것을 방어하지는 않겠다”며 무조건 ‘트럼프 감싸기’를 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마크 커크(일리노이) 상원의원은 같은 날 성명을 통해 “트럼프의 발언은 완전히 잘못됐고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아예 지지를 철회했다. 커크 의원은 “트럼프의 발언은 히스패닉과 여성, 그리고 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 대한 공격을 일삼은 과거 전례에 비춰 볼 때 더 이상 내가 그를 지지할 수 없도록 만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세상의 가장 위대한 자리(미국 대통령)에 필요한 기질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그동안 ‘트럼프대학’ 사기 혐의와 관련해 내부 서류 공개 결정과 함께 대선 직후 자신의 법정 출석을 명령한 곤살레스 쿠리엘(62) 샌디에이고 연방지법 판사의 인종적 편향성을 주장해 왔다. 그가 멕시코계이기 때문에 자신을 증오하고 재판을 불공정하게 진행한다는 것이 트럼프의 주장이다. 이런 트럼프에 대해 법과 질서, 제도적 가치를 중시하는 공화당의 주요 인사들은 일제히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류 진영의 이 같은 비판은 당의 대선 후보인 트럼프 때문에 오히려 대선을 그르칠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에 따른 것이다. 트럼프에 분노하는 히스패닉계와 이슬람계 등 소수계 유권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자칫 대선 본선은 물론이고 상ㆍ하원의원 선거도 망칠 수 있다는 게 주류 진영의 판단이다.
당 안팎의 전방위 비난에 트럼프는 일단 꼬리를 내린 모양새다. 트럼프는 이날 이례적으로 A4 용지 2장 분량의 긴 성명을 내고 “내 발언이 멕시코계에 대한 단정적인 공격으로 오해돼 유감”이라며 사실상 사과 입장을 밝힌 뒤 “나는 멕시코와 히스패닉계의 친구로, 수천 명의 히스패닉을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 더는 거론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며 문제를 매듭지으려 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언제까지 이 같은 자세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그는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쿠리엘 판사의 내부문서 공개 및 법정 출석 결정 자체에 대해서는 불만을 표출한 터라 언제든 다시 돌변해 히스패닉계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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