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집에 없을 때면 택배와 우편물을 받아주던 골목의 구멍가게 아저씨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젊었을 때는 우리 집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보수를 받고 자잘한 수리를 해주기도 했던 분이다. 늘 지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지만, 그는 내가 처음 봤던 젊었을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언젠가 옆집에 살던 친구가 그에 대한 불만을 말한 적이 있다. 불만의 요지는 ‘그 가게에서는 손님이 직접 봉투에 물건을 담아야 할 뿐만 아니라, 누워 있는 사람에게 가서 돈을 바친 뒤 누워서 내주는 거스름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번 들으며 의식하다 보니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여유가 있을 때는 그러려니 하다가도 시간에 쫓길 때면 나 역시 그에게 불만을 느꼈다. 자리를 깔고 누워 있는 사람에게 사려는 상품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여러 번의 헛손질 끝에 그걸 찾아낸 뒤 방문 앞으로 가 계산하는 것이 여간 성가시지 않았다. 아무리 아닌 척해도 나는 소비자의 잘난 권리를 아픈 이웃에게 마음속으로 요구했던 것이다. 영정 속 그의 얼굴은 처음 봤을 때처럼 젊었다. 그가 웃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데, 사진 속에서 그는 선하게 웃고 있었다. 인생이 잘 풀렸으면 그렇게 웃으며 사람들과 두루 소통하며 잘살았을 것이다. 그가 이승에서 힘에 부친 숙제를 잘 끝내고 홀가분해진 것에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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