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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하도급 사회의 ‘전관예우’

입력
2016.06.0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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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전관예우가 소위 정운호 게이트로 다시 한 번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검찰 특수부 검사장 출신인 ‘전관’ 홍만표 변호사는 기소내용을 축소하거나 제외하는 방법으로 의뢰인들을 ‘보호’했다. 그 대가로 그는 상식 밖의 금액을 수임료로 받았다.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그 돈의 일부는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나 그 윗선 접대를 위해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보통 검사장 출신이 변호사로 개업하면 2년 정도 전관 대우를 받는다는데 홍 변호사는 무려 5년을 그리했다. 그 동안 축소되거나 부풀려진 사건이 얼마나 될까. 이러한 전관예우의 관행은 비단 법조계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달 28일 서울지하철 구의역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을 정비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김 모 군(19세)은 은성PSD라는 외주업체 근로자였다. 서울 지하철(1~4호선)의 안전문 관리를 맞고 있는 이 업체에는 서울메트로 전직 간부들이 다수 취업하고 있는데 그 수가 무려 전체 직원의 70%에 이른다. 이들 전직 임원은 대부분 정년을 넘긴 사람들로, 이들 가운데 안전문 관리 자격 또는 그에 상응하는 기술을 보유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도급계약서는 메트로 전관들의 임금까지 정하고 있는데 그 액수는 김 군 같은 기술자에 비해 3배가 넘는다.

6월 1일의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고로 숨지고 부상한 근로자도 모두 건설사가 외주한 하청업체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대규모 건설 사업은 큰 건설사가 이름을 걸고 시공하지만 실제 작업은 하청업체가 도급을 받아 수행한다. 이들 가운데는 원청 건설사 출신들이 소유한 업체가 허다하다. 건설사가 하청업체에 일감을 도급하면 그들은 소위 ‘십장’들에게 이를 재하도급한다. 중층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하에서 위험은 위에서 아래로 전가되며 도급 피라미드의 저점에서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에게는 저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이 제공된다.

이러한 하도급 관행은 이상의 사례 말고도 산업의 전 부문에 걸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생활 속 가까이 있는 대형 마트나 백화점 등에도 ‘전직’들과의 사업 연계는 예외 없이 존재한다. 백화점과 마트의 주차, 경비, 시설관리 및 안내 등 대부분 영역은 도급으로 수행되는데 이들 가운데 다수는 원청 퇴직자들 소유다. 공공기관이라고 도급 관행이 없을 수 없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만 전국 고속도로 톨게이트 관리 사업은 대부분 한국도로공사의 퇴직자들이 나누어 소유한다. 최근 구조조정 논란의 중심에 있는 조선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조선소(원청회사)에는 물량을 도급받아 수행하는 다수의 사내하청 회사가 존재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원청 조선소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사람들이 소유한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느 한 곳 가릴 것 없이 전관이라는 특수 관계를 매개로 사업이 거래되고 교환되는 중층의 하도급 사회다. 덮여 있는 사례를 포함하면 하도급 구조화는 훨씬 보편적이며 광범위하다. 이와 같은 전관형 하도급 관행은 공정 경쟁을 억제하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왜곡한다. 도급의 단계가 늘어감에 따라 거래 참여자가 많아지면 교환 비용이 오르게 되고, 여기에 전관을 매개로 한 부정과 부패의 비용이 더해지는 경우 총거래비용은 비상식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기업 간 생산과 서비스의 유기적 연계인 하청 제도는 공존과 착취의 두 면모를 동시에 갖는다. 하청기업은 모기업의 생산과 판매에 의존해 비용을 절감하고 공급을 지속할 수 있지만, 대부분 경제 부침에 따르는 모기업의 위험부담을 넘겨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중층의 하도급 관계를 원청과의 특수관계인이 매개하게 되면 사업과 근로 관계상 위험은 모두 도급구조의 저점에 있는 하청업체 근로자가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 건전한 일자리의 창출, 양질의 일자리 유지 그리고 근로자 건강과 신체의 보호를 위해 이와 같은 ‘전관형’ 하도급의 청산이 시급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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