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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의 사과

입력
2016.06.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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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6월 7일

앨런 튜링. 그는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앨런 튜링. 그는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자살했다고 알려져 있다.

앨런 튜링은 적국의 암호와 씨름하며 전쟁 중인 조국을 이롭게 했고, 자신의 죽음을 암호화함으로써 인류를 이롭게 했다. 그에게 조국과 인류를 이롭게 하겠다는 목적의식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특별한 의도로 죽음을 기획했을 리는 더더욱 없다. 그는 수학자, 논리학자였다. 암호화한 기호들에서 질서와 논리를 찾아 의미를 풀어내는 과정 자체가 그에겐 도전이고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2차 대전 독일의 군사 암호 정보 체계(작성ㆍ해독 기계)를 부르던 이름이 ‘이니그마(Enigma)’였다.

튜링은 191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24세이던 1936년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복잡한 연산의 계산 알고리즘을 추상화한 모델, 즉 ‘튜링기계’의 개념이 거기서 비롯됐다. 인류는 25살에 이룬 저 업적을 기려 그를 ‘컴퓨터과학의 아버지’라 불렀고, 미국컴퓨터학회(ACM)는 컴퓨터공학과 인공지능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튜링상’을 제정했다.

1939년 전쟁이 나자 영국 정부는 그를 독일군 암호 해독부서인 ‘Hut 8’의 책임자로 발탁했다. 그의 활약이 어떠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지만, 1992년 BBC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한 동료는 “튜링이 없었다면 영국은 전쟁에서 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후 그는 제국훈장(OBE)을 탔고, 국립물리연구소(NPL)의 수학부서 창설을 주도하며 수리논리학에 기초한 초보적 형태의 컴퓨터 개발 연구를 지속했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52년 1월 23일 집에 도둑이 들었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외설 혐의로 입건됐다. 법원은 그의 과학적 재능과 국가에 헌신한 공을 참작, 그에게 구속 수감과 화학적 거세 중 하나를 택하도록 했다. 그는 약 1년 간 합성 에스트로겐 주사를 맞았다. 전후 유럽은 스파이들의 각축무대였고, 게이는 이중첩자로 포섭하기 좋은 타깃이었다. 그는 일체의 국가 보안(암호연구) 업무에서 배제됐고, 미국 입국도 거절 당했다.

54년 6월 7일 그가 숨졌다. 시안화칼륨(청산가리) 중독. 침대 머리맡에는 먹다 만 사과 한 조각이 놓여 있었다. 경찰은 자살이라고 밝혔지만, 사고사라는 설도 있다. 한 전기 작가는 그가 백설공주와 왕비의 사과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다고 썼다. 여왕이 튜링의 동성애 죄를 사면한 것은 2013년 12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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