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나홀로 환율 상승 효과
달러로 수익 집계 KIC는 원금 손실
공무원ㆍ사학연금은 0%대 수익률
연기금 환헤지 비율 축소 선회 추세

5.73%(국민연금), -2.36%(한국투자공사ㆍKIC), 0.88%(사학연금), 0.0%(공무원연금).
작년 한해 국내 대표 연기금들의 해외 주식 투자 성과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주식시장 흐름 전반을 보여주는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전세계지수(ACWI)’가 2% 이상 하락한 여파로 여타 연기금이 부진한 성적을 내보인 가운데 유독 국민연금만이 5%가 넘는 고수익을 거뒀다.
국민연금이 이처럼 압도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국민연금은 타 연기금과 달리 해외 주식시장에 투자할 때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일정 환율로 투자에 따른 거래금액을 고정하는 환헤지(hedge)를 2014년부터 전혀 하지 않는다. 작년 한해 원ㆍ달러 환율이 6.62% 상승하자 국민연금은 이를 모두 수익으로 인식, 해외 시장에서의 손실을 모두 만회하고 추가 수익까지 거뒀다. 국민연금은 ‘2015년도 기금 결산안’에서 “해외 주식은 환율 상승으로 매매 차익 및 배당 수익이 증가해 수익이 확대됐다”고 명시했다. ‘환율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반면 추가로 비용을 지불해가며 환헤지를 했던 그 외 연기금들은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환율 보너스’를 누리지 못했다. 사학연금과 공무원연금은 지난해 해외 주식 투자액의 각각 70%, 40%를 일정 환율로 환헤지했다. 예를 들어 1억 달러 규모로 해외 주식에 투자할 때 이들 연기금은 국내 달러 현물시장에서 1억 달러를 현재 환율로 매입하는 동시에, 달러 선물 시장에서 환헤지 비율만큼의 달러를 현재 환율 수준으로 매도해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는 식이다. KIC의 경우, 별도 원화 환산 과정 없이 ‘달러로 투자하고, 달러로 수익을 집계하는’ 탓에 환율 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며 원금 손실을 봤다.
국민연금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국내 연기금들은 해외 주식 투자 시 기준 지수(벤치마크 지수)를 추종하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터라 해외 대체투자와 달리 운용 역량 차이가 크지 않다”며 “오히려 외생 변수인 환율이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전했다.
국민연금은 해외 주식에 대한 환헤지를 완전히 폐지한 첫 해인 2014년에도 환율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그 해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 수익률은 8.94%로 사학연금(6.22%), 공무원연금(6.1%), KIC(4.82%)를 모두 앞질렀다. 2014년 원ㆍ달러 환율이 4.2% 상승한 것이 국민연금 수익률을 끌어올린 것이다.
이에 따라 환헤지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손실 위험(변동성)을 낮추고 장기 수익률을 높인다는 의견에 점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실제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 2002년 1월부터 2015년 6월까지 MSCI ACWI를 토대로 해외 주식 초과 수익률과 달러화 초과 수익률 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전 기간에 걸쳐 역(-0.7)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이는 다시 말해 시장 하락에 따른 손실을 환차익(달러 강세)으로 상쇄할 수 있고, 반대로 환차손(달러 약세)을 시장 상승으로 만회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100% 환헤지를 하면 환율과 시장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결과를 초래해 오히려 투자 변동성을 높인다는 지적이다.
국내 연기금들 또한 올해부터 국민연금의 환율 정책을 따라가는 쪽으로 선회하는 추세다. 공무원연금은 작년에 해외 주식투자 헤지 비율을 40%로 낮춘 데 이어 올해는 20%까지 추가로 줄일 예정이다. 사학연금의 경우 본래 올해 환헤지 비율이 60%로 정해져 있었으나, 이를 50%까지 낮추기로 했다. 공무원연금 고위 관계자는 “그간 다양한 연구결과를 보면 환헤지를 줄이는 것이 오히려 투자 변동성을 낮춘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라고 말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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