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우레탄 트랙 절반은 납 함량 기준치 초과할 듯
인조잔디 이어 학교 운동장 유해성 우려 현실로
안전 관리기준 도외시 사업 밀어부친 정부에 비난
“위험 학교 거쳐간 학생들 건강 추적조사해야”
“아이들이 인조잔디 운동장에서 체육을 하고 교실에 들어오면 옷에 잔디 파일(잎) 부스러기와 (충전재로 쓰이는) 고무알갱이에서 나온 까만 가루가 잔뜩 묻어있다. 인조잔디에서 유해물질이 집중 검출되는 부분이 파일과 충전재라는데 아이들 건강이 걱정스러울 수밖에 없다. 저학년 아이들은 잔디 바닥에 앉거나 뒹굴면서 고무알갱이를 만지는 일이 잦다. 그 손으로 간식을 먹으면 고무가루가 어디로 가겠나. 심지어 고무알갱이를 입에 넣는 아이들도 있다.”(서울 A초교 교사)
“한달 전쯤 학교에서 교내 방송으로 우레탄 트랙 검사 결과 중금속이 기준치보다 많이 나왔으니 트랙과 신체 접촉을 피하라고 했고 ‘트랙을 걷지 말라’는 안내판도 설치했다. 하지만 차단선을 치거나 깔개를 덮어놓은 것은 아니라서 평소와 달라진 건 특별히 없다. 물론 찜찜한 마음에 트랙 바깥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아무렇지 않게 우레탄을 밟는다.”(서울 B중 학생)
학교 운동장이 학생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인조잔디에 이어 우레탄 트랙에서도 기준치를 초과하는 유해물질이 속속 검출되고 있다.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학생들은 납을 비롯한 중금속,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PAHs) 등 두뇌를 손상시키고 암을 유발하는 화학물질들에 노출된다. 정부가 생활체육시설 확대 목표를 앞세워 10년 이상 적절한 안전기준 없이 학교 운동장 개조에 매달리다 빚은 결과다.
유해 우레탄 트랙 1,400개교에 이를 듯
각 시ㆍ도 교육청이 3월부터 이달 말까지 실시하고 있는 초ㆍ중ㆍ고교 우레탄 트랙 전수조사 중간 결과는 심각한 수준이다. 전국 학교 우레탄 트랙의 30% 정도가 깔린 수도권 학교 중 200여개교에서 한국산업표준(KS) 기준치(90㎎/㎏)를 초과한 납이 검출됐다. 서울에서 조사를 마친 143개교 중 51개교(35.7%), 경기 236개교 중 148개교(62.7%), 인천 42개교 중 29개교(69.0%)가 이에 해당한다. 강원은 40개 조사 학교 중 26개교(65.0%), 광주는 44개교 중 40개교(90.9%)에서 납이 기준치를 초과했고, 대전과 세종에서도 납 초과 검출 학교가 각각 15개교, 2개교가 나왔다. 교육부는 17개 시ㆍ도 전체 우레탄 트랙(2,811개)의 절반인 1,400개가량이 납 기준치 초과로 교체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납이 검출된 C초등학교 학부모는 “아들에게 우레탄 트랙 가까이 가지 말라고 매일 아침 신신당부를 하지만 한참 뛰어 놀 나이에 운동장을 이용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속이 상하다”고 불만을 표했다.
이번 전수조사는 3월 발표된 환경부의 학교 인조잔디 및 우레탄 트랙 유해물질 실태 조사(2015년 5~12월) 결과 수도권 초등학교 25곳 중 13곳의 우레탄 트랙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납이 검출된 데 따른 조치다. 우레탄 트랙은 전국 학교 네 곳 중 한 곳 꼴(24.1%)로, 인조잔디(16.0%)보다 더 많이 설치돼 있다.
인조잔디 이어 학생 건강 불안 증폭
앞서 2014년 전국 1,037개교 인조잔디 운동장을 대상으로 실시된 유해성 검사에선 174개교(16.8%)에서 납, 카드뮴, 크롬, PAHs 중 하나 이상이 초과 검출돼 충격을 줬다. 이마저도 KS 기준이 제정된 2010년 11월 이전 조성분만 조사한 것으로, 인조잔디 전체(1,870곳)에 대한 전수조사는 이뤄진 적이 없다. 정부는 이후 조성된 인조잔디는 안전하다는 입장이지만 2013년 표본조사에서 납과 PAHs가 초과 검출됐다. 우레탄 트랙의 경우 환경부 조사에서 문제가 드러난 13곳 가운데 5곳이 KS 기준이 제정된 2011년 4월 이후 조성된 것이다.
KS 기준마저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서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경기 D초등학교의 한 학부모는 “재작년 인조잔디 검사에서 기준치의 20배가 넘는 납이 검출되고 발암물질인 크롬도 기준치에 가깝게 나왔는데 학교에서 이를 알리지 않아 한참 뒤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며 “기준치 이하라도 아이들이 학교 다니는 내내 몸에 축적되는 만큼 인조잔디와 우레탄 트랙을 당장 걷어내야 한다”고 성토했다. 김수민 녹색당 언론홍보기획단장은 “교육부가 고시한 인조잔디 내구연한 7년이 이미 지났거나 올해 도래하는 학교가 677곳에 이를 정도로 학생들이 위험 물질에 오래 노출돼온 상황이라 추적조사를 통해 학생들의 건강 이상 여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은 뒷전, 전시행정 매달린 정부
상황이 이처럼 심각해진 데엔 정부의 책임이 크다.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는 학교 인조잔디운동장 조성 5개년 계획(2006~2010년ㆍ443개교 목표), 체육교육 활성화 사업추진계획(2009~2012년ㆍ1,000개교)을 추진하면서도 사업 초기부터 제기된 유해성 논란을 외면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유해성 검사에 착수한 것은 2013년으로, 대대적인 운동장 조성 사업이 일단락된 이후였다.
학교 운동장 공사에 유해 자재가 쓰이는 것을 막기 위한 품질 기준은 늑장 제정됐다. 정부는 2007년 학교 인조잔디 충전재(고무분말) 검사에서 납ㆍPAHs 기준치 초과 문제를 다수 발견하고도 3년이 지난 2010년 11월에야 학교 인조잔디에 대한 품질 기준(KS M 3888-1)을 제정했다. 유해물질이 집중 함유된 잔디 파일 규제 사항이 이 기준에 포함된 것은 그로부터 또 3년 뒤였다. 학교 우레탄 트랙의 품질 기준(KS F 3888-2)은 인조잔디보다 늦은 2011년 4월 만들어졌다.
품질 기준의 허점은 여전하다. 시공 전 업체가 제출하는 주(主)자재에 대해서만 유해성 검사를 실시하도록 돼 있어 우레탄 트랙을 빨리 굳히는 경화제, 인조잔디 파일의 초록색을 선명하게 하는 안료 등 유해성 위험이 높은 부수적 자재는 통제하기 어렵다. 완공 후 유해성 관리 규정이 없는 것도 문제다. 인조잔디 충전재 보충 과정에서 시공 때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저가 고무알갱이를 사용하는 업체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는 “학교 인조잔디 운동장과 우레탄 트랙도 감리 대상에 포함시켜 시공 과정에서 안전한 자재가 사용되는지 감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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