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어지럼증ㆍ고혈압 호소
새끼 밴 소 유산 신고접수도
“생산 공정 이전 약속 일방 폐기
업체ㆍ당국 책임지는 사람 없어
공장 퇴출까지 물러서지 않을 것”
“한 두 번도 아니고 불안하고 무서워서 집에 돌아가는 게 겁나요.”
6일 오전 11시쯤 충남 금산군 군북면 사무소 앞 군북초등학교 실내체육관. 지난 4일 화학약품 제조공장인 램테크놀러지에서 발생한 불산 유출 사고로 대피한 주민들이 모여 앉아 섬뜩했던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70대로 보이는 한 주민은 약 두 봉지를 연거푸 생수와 함께 들이킨 뒤 “이틀이나 체육관에서 잠을 설친 채 떨었더니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군북면 조정리 주민 이미화(66)씨는 2년 전 악몽을 채 잊기도 전에 다시 대피소 신세가 됐다. 이씨는 “재작년 사고 때 입 안이 헐고, 하혈까지 했다. 눈에 실핏줄도 터지고, 기르던 야채는 다 죽어버렸다”며 “그런데 2년도 지나지 않아 또 사고가 났다. (재발 안 되도록 한다더니) 이제 아무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불산 유출 사고로 후유증을 호소하는 주민은 갈수록 늘고 있다. 사고 당일 10여명이던 병원 치료 환자는 6일 오전까지 18명으로 늘었다. 대전에 사는 한 주부는 사고 지역으로 어린 두 아들과 농사 체험을 왔다가 봉변을 당해 피해 신고를 했다. 새끼를 밴 소가 유산했다는 신고 등 피해 신고가 군북면사무소에 속속 접수되고 있다.
대피소 한 켠에는 금산군보건소 직원들이 응급진료를 하고 있었다. 어지럼증은 물론, 메스꺼움과 고혈압을 호소하는 주민을 진료하느라 분주했다.
김기경 마을 사고대책위원장은 “사고가 벌써 4번이나 날 정도로 유독물질을 허술하게 관리하는 회사에 마을 주민들이 생명을 맡기고 살아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불안한 마음을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램테크놀러지는 2014년 사고 때 2018년까지 이전한다고 약속했지만 작년 가을에 재정이 없어 이전을 못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도 했다.
연례행사처럼 사고가 터지고, 피해가 확산되면서 주민들은 어느 때보다 심각한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있다. 조정리 황규식 이장은 “반복되는 불산 유출 사고는 한 마디로‘인재’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업체도, 환경 당국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장 대책 회의에서 업체와 금강유역환경청을 대상으로 면담과 집회 등 공동 대응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며 “이번엔 업체가 퇴출될 때까지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과 환경당국은 6일 사고 업체인 램테크놀러지 유독물 설비 이송배관의 필터하우징 안전장치가 녹아 불산이 누출된 것으로 보고 해당 업체 직원 3명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금강유역환경청 화학안전관리단도 이날 램테크놀러지를 찾아 현장의 안전 설비 문제점 및 관계자들의 안전관리 지침 준수 여부 등을 조사했다.
경찰 관계자는 “폐쇄회로(CC)TV는 물론, 회사의 안전 규정 등을 토대로 관계자들의 준수 여부를 조사하는 한편, 국과수 감정 및 금강유역환경청 등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업체의 과실 여부를 면밀하게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산=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