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유럽전쟁을 막을 수 있는 본질적인 방법은 유럽통합이다.” 윈스턴 처칠이 1946년 취리히 연설에서 ‘유럽합중국’의 비전을 제시했다면 이를 현실화한 것은 1950년 5월의 ‘슈만선언’이다. 레지스탕스를 이끌었던 프랑스 정치인 로베르트 슈만이 독일과 프랑스의 철강ㆍ석탄 연대를 밝힌 이 선언은 유럽연합(EU)의 모태가 된 유럽경제공동체(EEC)의 산파역을 했다. 대부분 유럽국가들이 이 선언을 미국의 독립선언서에 비유해 ‘EU의 독립선언서’라고 부르며 매년 5월 9일을 ‘유럽의 날’로 기념하는 이유다.
▦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지지자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지난달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유럽통합을 시도했고, 비극으로 끝났다”고 일갈했다. 처칠이 말한 것처럼 “공동의 시민의식”으로 히틀러의 재등장을 막고자 했던 EU가 히틀러의 광기와 동일시되는 현실이 아이러니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존슨 개인에 국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통합과 화해에 반대하는 분열의 정치는 지구촌 공통의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인종 장벽을 쌓겠다고 하고, 유럽에서는 극우 파시즘이 득세하고 있다.
▦ 유럽통합이 손가락질 받은 것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로 상징되는 유럽 재정위기의 해법을 놓고 독일과 다른 유럽 국가들이 충돌한 게 대표적이다. 유로존 내에서는 회원국 재정지원을 놓고 분열상이 노출되고, 유로존 바깥에서는 비유로존 국가들이 유로의 위기가 전염되지 않게 EU의 차단막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판국이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려는 것도 같은 이유다. 유럽 대륙에 대한 전통적인 회의주의 시각도 작용했겠지만, 통합에 따르는 경제ㆍ사회적 부담을 지지 않겠다는 의도다.
▦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23일로 다가왔다. 잔류 분위기가 더 강했던 데서 지금은 결과를 점칠 수 없는 정도로 혼미하다. 탈퇴와 잔류 사이에 경제적 득실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고, 탈퇴 도미노를 유발해 세계 정치ㆍ경제의 충격파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렇게 된 데는 유럽통합이라는 정치적 명분에 매달려 경제통합 단계를 소홀히 한 책임이 크다. 지금은 처칠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해관계가 복잡한 세상이다. 브렉시트 논쟁이 일탈이 아닌 유럽통합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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