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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한국이 무서워서

입력
2016.06.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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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라 그런지 아이들 초등학교에서 애국을 강조하는 교육이 늘었다. 매년 열리는 애국가 쓰기 대회 준비를 위해 아이들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가사를 베껴 쓰며 준비에 열중이었다. 내친 김에 제대로 된 애국 교육을 하겠다며 주말을 맞아 용산 전쟁기념관까지 다녀왔다. 전쟁은 기억할 일이지 ‘기념’할 일이 아니라 보지만, 아이들에게 똑바로 서지 못한 국가가 전쟁할 때의 비참함을 배우게 하고 싶어서였다.

집에 와 아이들을 재우고 보호자 서명을 위해 학교 글쓰기 숙제인 일기장을 펼쳐봤다. 내 기대와는 달랐다. 역시 국가가 노린 교육의 효과는 있었다. 아이들은 전쟁의 아픔보다는 기념관 어린이박물관에 마련된 ‘목청껏 애국가 따라 부르기’, ‘태극기ㆍ무궁화 그리기’ 등 애국심 고취 프로그램이 인상 깊었나 보다. 조용히 일기장을 덮었다. 자문했다. 아이들은 과연 언제까지 대한민국을 자랑스러워할까. 차츰 커가면서 한국의 실체를 하나하나 깨닫는 순간, “아빠는 왜 그 때 이런 사실을 얘기 안 해줬어요” 되물을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최근 몇 년간 국가의 존재 의미를 물을 일이 많아졌다. 도처에서 들려오는 억울한 죽음, 아이들이 배워야 할 모범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는 걱정 때문이다. 4월 후배들이 취재했던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의 평범한 삶을 향한 안간힘에, 5월 구의역 사고 희생자 어머니의 안타까운 기자회견문에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처참한 사고 후 아들 모습만 떠오릅니다. 제 심장의 두근거림이 저 지하철 소리처럼 쿵쾅거립니다. 혼자 얼마나 무서웠고 두려웠을까요. 3초만 늦게 문이 닫혔다면 제가 그 따뜻한 손을 부빌 수 있었을 텐데….”

채 꽃도 피우지 못하고 떠난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어머니는 오열했다. “우리는 아이에게 늘 책임감 강하고 떳떳하고 반듯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우리 사회는 책임감 강하고 지시 잘 지키는 사람이 개죽음당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죽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를 위험과 죽음으로 내몰았던, 돈과 효율성만 좇는 탐욕은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엄마부대라는 사람들이 고인 빈소에 찾아와 분탕질을 치는 이념 때 묻히기 행태가 벌써 재연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세월호 참사 후 그랬던 것처럼 ‘재수 없는 교통사고’ 취급만 받고, 정치와 자본의 공작에 따라 편 가르기 싸움에 휘말리고, 우리는 애써 망각한 채 그저 ‘내 아이가 아니었으니 다행’이라 위안하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니 아득하다.

지난달 강남 번화가 화장실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한 20대 여성 사건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민낯도 마찬가지다. ‘운이 좋아 나는 살아 남았다’는 여성과 약자의 절규를 비아냥대는 이들, 강퍅한 현실의 스트레스를 혐오 배설로 털고 마는 그들 속에서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지 걱정이다.

작가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서 주인공 계나는 한국에서 살 수 없다며 이렇게 절규했다. “도대체 난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해? 여기서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거야. 이런 일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겪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었어.”

똑같이 묻고 싶다. 19세 청년이 컵라면 하나 먹을 시간 없이 종종거리며 목숨 걸고 일하는 구조가 당연시 되고, 여성이란 이유로 불안한 마음에 거리로 나서지도 못하고,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는 냉대와 차별 속에서 하루하루 견뎌야 하는 상황, 내년 내후년에도 또 겪어야 하는가.

국가와 정치는 왜 존재하는가. 우리나라 사랑하게 하는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내 아이, 네 아이 없이 다 함께 살아갈 만한 나라를 만드는 게 먼저 아닌가. 잘못은 바로잡고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의 모범을 제대로 보여주는 게 진짜 애국 교육이다. 생명보다 돈, 공존보다 약육강식을 우선하는 한국에선 무서워 살 수가 없다.

정상원 사회부 차장 orn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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