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일상적인 공포를 그대로 보여준 유익한 방송이었다.” “잘 포장한 남성혐오 방송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난 4일 밤 방송된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1034회 ‘검거된 미제사건-강남역 살인사건의 전말’ 편이 강남 20대 여성 살인 사건 이후 불붙은 여성 혐오 논란의 새로운 전장이 됐다. 지난달 17일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이 끔찍한 사건으로 한국사회 내 여성혐오 흐름에 대한 문제제기와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일부 남성 시청자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여성 단체들의 지극히 일방적인 주장만 내보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날 방송에선 사고 당일 가해자와 피해자 각각의 행적과 이후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일어난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열기, 이어진 여혐 논쟁 등을 집중 조명했다. 이어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여성들의 인터뷰를 소개하며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일상적으로 발생해 온 폭력을 전하기도 했다.
방송이 끝난 직후부터 6일 오후 현재까지 시청자 게시판에는 1,600여 개의 시청 소감이 올라왔다. 대부분이 “(이날 방송이) 남성을 싸잡아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규정지었다”는 과격한 반응이었다.
이들은 진행자 김상중이 “여성들이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구조 속에서 당하는 비하, 조롱, 폭력에 대해 우리 남성들이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며 “침묵의 결과로 우리의 어머니, 아내 혹은 딸들이 희생자가 될 수 있고 아버지와 형제, 아들들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전한 마무리 발언을 특히 문제 삼았다. 일부 시청자는 “프로그램 작가들이 다 메갈(여성 혐오에 반대하는 사이트 ‘메갈리아’의 줄임말)” “김상중도 범죄자 예약” “페미니스트 짜깁기 방송”이란 악의적인 비판을 쏟아내기도 했다. 성추행, 성희롱 등 실제 성폭력 피해에 노출됐던 제보자들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선 “저 말을 어떻게 믿느냐” “조작방송” 이란 폭력이나 다름없는 공격이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반응 자체가 우리 사회에 깊게 깔린 여성 혐오 경향을 단적으로 드러낸다는 지적이 많다.
5일 방송을 시청한 직장인 박모(28)씨는 “(일부 남성 시청자들이) 앞뒤 문맥은 다 떼어놓고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 한 마디에 진짜 메시지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며 “여성들의 공포를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게 우선”이라고 비판했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방송 이후 반응을 보면 여성이 일상에서 느끼는 차별이나 폭력에 대해 우리 사회 남녀가 느끼는 온도차이가 얼마나 다른지 확연히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도 “강남 20대 여성 살인사건 이후 거리에 나온 여성들의 외침과 그녀들이 느끼는 두려움의 실체를 공감하고 싶었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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