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62ㆍ독일) 국가대표 감독이 부임한 지 1년째 되던 지난해 10월,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슈틸리케 감독을 직접 뽑은 주인공이다. 지난해 1월 호주에서 열린 아시안컵 준우승 등으로 분‘갓틸리케’ 열풍에 대해 이 위원장은 “아직 섣부르다”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실제 슈틸리케호의 민낯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일(한국시간) 무적함대 스페인과 평가전에서 슈틸리케호는 속절없이 무너지며 1-6으로 대패했다. 하지만 5일 체코를 적지에서 2-1로 제압하며 반전에 성공했다. 유로 2016 출전을 눈앞에 둔 체코 출정식에 고춧가루를 뿌렸다. 체코 언론 ‘악투알네’는 ‘강남스타일로 나선 한국축구, 체코를 약탈하다’는 제목으로 경기를 소개했다. 다른 언론 ‘티스칼리’는 “윤빛가람의 프리킥은 골키퍼가 손 쓸 수 없었고 석현준은 쓰나미처럼 득점을 터뜨렸다”며 득점 장면을 극찬했다. 슈틸리케호의 진짜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시험대였던 유럽 2연전을 결산한다.
두 경기 모두 선발로 나선 손흥민(24ㆍ토트넘)은 조금 부족했다. 부진했다고 하기는 지나치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다. 한국 공격수로는 보기 드문 빠른 드리블, 호쾌한 슈팅은 여전했다. 하지만 ‘에이스’의 무게감은 떨어졌다. 결국 지난 시즌 주전 경쟁에서 밀리는 바람에 감각이 떨어졌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대 난제인 양쪽 풀백은 여전히 도돌이표다.
슈틸리케 감독은 스페인전은 윤석영(26ㆍ찰턴)-장현수(25ㆍ광저우R&F), 체코전은 장현수-이용(30ㆍ상주상무)을 좌우 풀백으로 내세웠다. 모두 합격점을 주기 힘들다. 장현수는 주 포지션이 중앙 수비수나 중앙 미드필더지만 대표팀에서는 측면 수비수로 뛴다. 슈틸리케 감독이 기존 측면 수비수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좌우 풀백 부재는 대표팀 전 감독들을 괴롭혔던 해묵은 과제다. 현대 축구에서는 수비를 위해서나 공격 전환 때나 측면 풀백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고민도 계속 깊을 것으로 보인다.
석현준(25ㆍ포르투)은 합격점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투박하긴 하다. 최근 소속 팀에서 경기를 많이 못 뛴 한계도 나타났다. 체코전에서 터진 윤빛가람(26ㆍ옌볜FC)의 프리킥 골은 냉정히 말해 그 전 역습 상황 때 석현준이 패스든 슈팅이든 자신이 직접 해결했어야 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석현준은 좌우로 크게 움직이며 동료들에게 공간을 내줬고 거구의 체코 수비수들에 밀리지 않고 볼을 따내 연결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입맛에 꼭 맞는 플레이였다.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체코전 결승골까지 작렬해 경쟁자 황의조(24ㆍ성남)에 비해 확실히 한 발 앞섰다.
골키퍼 정성룡(31ㆍ가와사키 프론탈레)의 부활도 반갑다.
김현태 전 국가대표 골키퍼 코치는 “특히 국가대표 골키퍼는 경쟁 체제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누가 주전일지 경기 직전까지 모를 정도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서로 실력이 느는 선순환 구조가 완성된다. 2002년 한ㆍ일월드컵 때 이운재와 김병지가 그랬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이운재를 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던 정성룡이 일취월장해 주전을 빼앗았다.
슈틸리케호의 ‘넘버원 골리’ 김진현(29ㆍ세레소 오사카)은 스페인전에서 연이은 실수를 저지른 반면 정성룡은 체코전에서 선방으로 건재를 과시했다. 9월부터 시작되는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두고 둘은 치열하게 주전을 다툴 전망이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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