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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체질을 탓할 때

입력
2016.06.0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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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의 전시회에 갔다가 휴관일이라 허탕을 치고 돌아왔다. 두 주 남짓한 전시 기간에 휴관하는 날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한 것이 잘못이었다. 하지만 전시 포스터에조차 휴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왕복 3시간이 넘는 길을 갔다가 되돌아왔으니 마음이 덤덤할 수가 없었다. 그 작가의 그림에는 남다른 상상력이 있어 꼭 보고 싶었기 때문에 관람은 커녕 포스터 한 장 손에 쥘 수 없는 전시회를 기획한 사람의 무성의함에 화가 치밀었다. 실망으로 맥이 빠진 나는 문이 닫힌 전시회장 앞에서 전화를 찾아 손에 들었다. “토요일은 갤러리의 문을 열지 않는다 하여 그냥 갑니다”라는 뼈 있는 문자를 보내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답이 왔다. “저런~”으로 시작되는 화가의 문자를 받자마자 나는 더 화를 내고 말았다. “저런~”이라는 표현에서는 자신의 전시회에 왔다가 그냥 되돌아가는 사람이 겪는 일을 남의 일 대하듯 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현장에 있는 나와 같은 심정임이 느껴지도록 “이런~”이라는 표현을 써야만 했다. 글쟁이들만 그처럼 타인의 말이나 단어에 예민할 것일까. 며칠 뒤 만난 한 시인에게 나는 그 전시회에 갔다가 못 보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사연을 이야기했다. 내가 미리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그 시인 역시 “저런~”이란 대목에서 나와 똑같이 반응했다. 그러니 우리가 누구를 탓하랴. 체질을 탓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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