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6월 6일
미국에 월트 휘트먼이 있다면 러시아에는 알렉산드르 푸시킨(Aleksnadr Sergeevich Pushkin, 1799~1837)이 있다. 오늘(6월 6일)은 러시아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의 생일이다.
그는 제정 러시아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농노와 서민의 삶에 감응했고, 반봉건ㆍ반차르 의식에 충만한 사실주의 시와 희곡, 소설을 썼다. 1825년의 데카브리스트 봉기를 이끈 여러 지하단체에 가담해 활동했고, 정치 풍자시로 20대 초인 1820년 남러시아로 추방 당해 약 6년간 사실상 유배 생활을 하며, 운문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썼다.
그는 10살 때부터 프랑스어로 시를 지어 15살에 첫 시집을 냈다고 한다. 10대 말 외무부 문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당대의 혁명주의자들과 교유하며 진보적 자유주의 사상을 익혔고 ‘류슬란과 류드밀라’같은 서사시를 발표했다.
봉기가 진압된 뒤 모스크바로 복귀했지만 차르는 그의 작품을 직접 검열했고, 여행을 하더라도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38년을 사는 동안 ‘대위의 딸’ 훗날 영화에도 영향을 준 희곡‘모차르트와 살리에리(1830)’ ‘스페이드의 여왕’(1834)등을 썼다. 직계 제자인 고골리를 비롯,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막심 고리키 등 19, 20세기의 걸출한 작가들이 그가 닦은 길을 걸었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이발소나 역 대합실, 식당 벽에 성경 액자 다음으로 많이 걸렸을 시가 그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일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고통의 날은 여전하지만/ 기쁨의 날이 곧 오리니// 마음은 늘 미래에 살고/ 지나가는 슬픔에도 끝은 있다(…)” 일제 치하의 어떤 지식인이 푸시킨을 알고 저 시를 알아 국내에 소개했을 것이다. 당시에도, 또 이래로 한국인에게는 특별히 저 인고의 낙관이 필요했고, 지금도 삶은 여전히 ‘그대’를 속이고 있지만, 그의 시 액자들이 언젠가부터 귀해졌다. 특유의 ‘시화전스러운’미감에 질린 탓도 있겠지만, 언젠가 온다던 기쁨약속에 더는 속기 싫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푸시킨 자신도 속이는 삶을 참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염문을 뿌린 프랑스 장교와 결투를 벌였다가 총상을 입고 숨졌다. 눈엣가시 같았던 그를 제거하기 위해 차르 귀족들이 꾸민 음모였다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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