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에게 매달 2,500스위스프랑(300만원)을 지급하자는 기본소득 정책을 놓고 스위스에서 5일 실시한 찬반 국민투표 결과 반대표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중간 과정일 뿐”이라며 문제 제기를 지속할 의지를 표명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스위스여론조사기관(GFS)이 이날 낮 12시 국민투표 종료 후 1시간만에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유권자 78%가 이 법안에 반대했다. 이번 투표는 2013년 10월 진보 시민단체연합인 ‘스위스 기본수익(BIS)’이라는 단체가 13만명의 서명을 얻어 성사시켰다. 매달 모든 성인에게 2,500스위스프랑을 제공하고 어린이ㆍ청소년에게 650스위스프랑(67만원)의 기본소득 보장을 골자로 한다. 이 제도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 하기 위해 최소한의 소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로봇과 인공지능(AI)의 도입으로 실업자가 양산될 것”이라는 논리도 폈다.
투표 전 이미 반대 여론이 64%에 달해 부결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지만,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제공하자는 이번 스위스의 정책 검토는 소득 불균형 문제로 고심하는 많은 나라들의 관심사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가디언 등도 투표의 의미와 전망을 크게 보도했다.
반대론자들은 재정의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은 복지 포퓰리즘이라며 반발해 왔다. 스위스 정부도 재원 조달의 어려움, 근로 의욕 저하 등을 이유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해 왔다. 기존 연금 수혜자들의 혜택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찬성론자들은 앞으로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거두지 않았다. BIS 공동대표이자 대변인인 다니엘 하니는 독일 일간 ‘데어 카게스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이번에 통과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제비뽑기가 아니라는 점도 알고 있다. 이번 투표는 중간적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진 스위스 유권자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다음 세대가 어려운 상황에 있다”며 “이번에 통과되지는 않겠지만 20년 뒤에는 성사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들 가운데 핀란드와 네덜란드도 비슷한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핀란드는 모든 국민에게 월 800유로(106만원)를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고, 네덜란드는 일부 지자체에서 전체 시민에게 월 900유로(119만원)를 주는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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