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추가지원이 유일한 해법
지난달 4일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가며 정상화를 위한 첫 걸음을 뗀 한진해운이 구조조정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회생의 첫 번째 관문인 용선료(선박 임대 비용) 인하 협상에서 진전을 이루면서 경영 정상화에 청신호가 켜진 현대상선과 달리 한진해운은 그간 밀린 용선료에 발목이 잡혀 용선료 인하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용선료 협상이 지지부진하면 앞으로 줄줄이 예정된 회사채 보유자를 상대로 한 채무재조정도 꼬일 수밖에 없다. 늦어도 8월 초까지 해외 선주들을 상대로 용선료를 깎고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를 막아야 법정관리를 피할 수 있는 한진해운으로선 벼랑 끝에 내몰린 상황이다.
5일 금융당국과 채권단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최근 용선료 협상 자문 로펌으로 영국계 프레시필즈(Fresh Fields)를 선정해 본격적으로 해외 선주들과 용선료 협상을 진행 중이다. 프레시필즈는 이스라엘 컨테이너선사 ‘짐(ZIM)’의 협상에 투입됐던 법률 사무소로, 지난 2014년 용선료 인하 합의를 이끌어낸 곳이다. 한진해운으로선 명성이 높은 로펌을 협상단에 투입하며 승부수를 띄웠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협상 중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아직 용선료 협상에서 이렇다 할 진척이 없다”며 “용선료를 깎으려면 당근과 채찍 전략을 써야 하는데 현재 한진해운의 현금 상황이 좋지 못하다 보니 현대상선에 견줘 당근으로 제시할 만한 게 부족하다”고 말했다.
갈 길 바쁜 한진해운의 발목을 잡은 건 그 동안 밀린 1,000억원대의 용선료다. 한진해운은 캐나다 선주 시스팬에 빌린 컨테이너선 3척의 용선료를 1,160만달러(약 137억원) 연체했다. 그리스 선주인 나비오스는 지난달 “밀린 용선료를 갚으라”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한진해운 소유 선박을 사흘 간 억류하기도 했다. 금융권 안팎에선 한진해운의 용선료 연체액이 이달 중 2,000억원으로 불어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용선료를 깎아주는 대가로 여러 혜택을 줘도 모자란 데 용선료까지 밀린 상황이라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문제는 한진해운이 채권단에 더는 손을 벌릴 수 없는 상황에서 밀린 연체료 등 추가 자금을 자력으로 구할 길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금융권에선 한진해운의 대주주인 대한항공이 측면 지원에 나서는 게 현재로선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이자 사실상 유일한 해법이라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채권단도 지난 2월부터 물밑으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에게 추가 지원을 끊임없이 요청했다. 하지만 조 회장측은 아직까지 꿈적도 하지 않고 있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한진해운은 외부 지원이 없는 이상 회생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을 조 회장이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곧 움직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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