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하마드 알리는 세계 복싱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선수인 동시에 숱한 어록을 남긴 ‘링 위의 시인’이기도 했다. 미국 ABC방송은 “알리는 복싱 가운을 입은 로버트 프로스트, 챔피언 벨트를 맨 마야 안젤루(흑인여성 시인)”라고 평가했다.
알리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뒤 미국의 인종차별에 치를 떨며 금메달을 강물에 집어 던지고 프로로 전향한다. 한때 자신의 스승이기도 했던 아치 무어와 1962년 11월 15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맞대결을 펼쳤다. 알리는 경기 전 “무어를 4회에 KO 시키겠다”라고 대기실에 적었고 말 그대로 무어를 두들겨 4회에 KO 승을 거뒀다.
알리는 1964년 2월 25일 마이애미비치 컨벤션 홀에서 WBA·WBC 통합 챔피언인 소니 리스턴과 붙었다. 경기를 앞두고 알리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고 했다. 리스턴은 강펀치를 지녔지만 알리에게는 ‘알리 스텝’이라 불리는 현란한 풋워크가 있었다. 리스턴의 강펀치를 피한 알리는 빈틈을 노려 말 그대로 펀치를 벌처럼 쐈다. 결국 리스턴은 눈이 부어 더는 싸울 수 없게 돼 알리가 7회 TKO승으로 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다.
1970년 링에 복귀한 알리는 1974년 10월 30일 WBC·WBA 챔피언 조지 포먼(67)과 자이르(현 콩고 민주공화국) 킨샤샤에서 맞붙었다. 역대 최강의 주먹을 가졌다고 평가 받는 포먼은 당시 24세의 신예였고, 알리는 32세의 노장 복서였다. 도박사들은 포먼의 승리를 점쳤다. 알리는 8라운드까지 로프를 등지고 포먼의 주먹세례를 잘 버티다가 8라운드 종료 직전 기습적인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얼굴에 적중시키고, 나비처럼 코너에서 빠져 나와 전광석화 같은 주먹을 날려 KO 승을 따냈다. ‘킨샤샤의 기적’이라 불리는 복싱 역사 최고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알리와 조 프레이저는 챔피언 자리를 놓고 세 번 붙었다.
1971년 3월 8일 열린 둘의 1차전은 15라운드까지 가는 혈투였다. 도전자 알리는 15라운드에서 챔피언 프레이저의 왼손 훅에 맞고 판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알리의 생애 첫 패배였다. 1974년 2차전은 판정 논란 속에 알리의 승리로 끝났고 이듬해 3차전이 열렸다. ‘세기의 경기’로 불린 전설 속의 승부에서 알리는 14라운드 TKO 승리를 거뒀다. 알리의 입담은 여전했는데 프레이저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전사다. 나 다음으로”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알리는 1973년 전세계를 강타한 에너지 파동 때는 “수억의 인구가 전력을 소모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최단시간내에 상대를 눕히겠다”고 유머를 던졌다. 또 조지 포먼과의 대결을 앞두고는 “어이 포먼, 나는 복싱계의 대통령이야. 자네가 골목대장이던 시절부터 말일세”라고 상대의 기를 죽였다. 래리 홈즈전을 앞두고 포드 대통령 초청으로 백악관을 방문 했을때는 “홈즈는 30세에요. 너무 늙었죠. 내가 38세지만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어요. 나는 인간이 아니거든요. 신을 제외하곤 아무도 나의 위대한 행적을 흉내내지 못했다고요.” 알리는 또“나는 가장 위대한 복서다. 또한 나와 상대하는 복서는 모두 삐에로다”라며 입담을 과시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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