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과 이정재가 만나면 정말 다를까요?
지난달 19일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가 연예기획사 아티스트 컴퍼니의 설립을 발표했습니다. 20년 가량 연예계의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로 지내온 동갑내기(43) 두 사람의 결합은 연예계의 눈길을 모으기 충분했습니다. 마흔 중반에 이른 두 별이 만들어낼 시너지에 대한 기대도 컸습니다. 작은 부침은 있었어도 20년 넘게 주연급 배우로서의 자리를 단단히 지키는 두 사람이니 여러 화제를 뿌릴 만도 합니다.
충무로도 두 사람이 만든 아티스트 컴퍼니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배우들의 연예기획사 설립은 그리 큰 뉴스가 아닙니다. 배용준은 키이스트를, 이병헌은 BH엔터테인먼트를 각각 설립하며 경영 능력을 인정 받았습니다. 장동건도 에이엠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가 SM C&C와 합병했습니다. 비록 자신과 부인(이나영)만 소속된 회사이지만 원빈도 이든나인이라는 연예기획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충무로는 아티스트 컴퍼니를 이전 연예인들이 세운 기획사들과 달리 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환대하지만 뒤에서는 경계의 눈빛을 보이고 있습니다.
공동 설립자 정우성과 이정재의 면면만으로도 충무로 관계자들, 특히 제작자들은 심기가 불편할 만합니다. 야망과 포부가 만만치 않고 대중적인 인지도까지 높은 두 배우가 충무로 지각변동을 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정우성의 이력을 돌아보면 제작자들의 경계심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정우성은 오래 전부터 영화 연출과 제작에 대한 꿈을 키워왔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인기그룹 god의 노래 ‘그대 날 떠난 후로’와 ‘모르죠’ 등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고, ‘LOVE b’라는 단편영화를 첫 연출하며 자신의 재능을 탐색했습니다. 2008년엔 영화사 토리스필름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영화 연출에 나서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했습니다.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는 토리스필름 이름으로 감독과 스태프들을 초대해 비공개 파티를 열며 영화제작 또는 감독 데뷔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측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 즈음 영화계에서는 정우성이 한 드라마 작가에게 40억원 가량의 사기를 당했다는 소문이 함께 돌기도 했는데요. 돌이켜보면 정우성의 영화 제작과 연출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한 사건으로 여겨집니다. 정우성은 2014년 대만배우 장첸 등 동아시아 배우 세 명이 참가한 옴니버스영화 ‘세가지 색-삼생’ 속 에피소드인 ‘킬러 앞에 노인’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정우성은 올해 개봉한 ‘나를 잊지 말아요’에 주연뿐 아니라 기획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배우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고 투자 유치까지 부진했던 ‘나를 잊지 말아요’는 정우성이 합류하면서 제작에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흥행(42만7,113명)에선 큰 재미를 못 봤지만 정우성의 스타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정우성이 아티스트 컴퍼니를 통해 당장 영화 제작에 뛰어든다 해도 큰 장애물은 없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화 제작과 연출에 대한 의욕을 오랫동안 보여온 정우성에다 이정재까지 더해졌으니 아티스트 컴퍼니는 충무로의 새 복병으로 봐도 좋을 듯합니다. 아티스트 컴퍼니 출범을 전후해서 이정재가 몇몇 제작자들에게 공동제작을 타진했다는 소문도 들려옵니다.
충무로 제작자들이 정우성과 이정재의 결합을 만만치 않은 위협으로 보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최근 주요 투자배급사들은 영화를 투자배급하는 과정에서 제작자들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흥행에서 큰 성과를 보여준 스타급 감독들과 전속 계약을 맺고 투자배급사들이 영화를 자체 제작하려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티켓 파워를 지닌 스타 배우들이 투자배급사와 ‘직거래’를 하면 제작자들의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정우성과 이정재가 의기투합한 아티스트 컴퍼니가 배우 제작자 시대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 제작자는 “투자배급사들은 흥행에 큰 영향을 끼치는 유명 배우들을 보고 투자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정우성 이정재 같은 배우가 제작에 직접 나서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아티스트 컴퍼니는 설립을 알리는 보도자료에 종합엔터테인먼트사라는 수식을 사용했습니다. 배우들의 연예 활동에만 기대지 않고 콘텐츠 개발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각오로 해석됩니다.
할리우드에서 배우들이 제작자로 나서는 모습은 흔하디 흔합니다. 한국영화사를 되돌아봐도 영화제작과 연출에 나섰던 배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신성일 최무룡 박노식 김지미 하명중 등 많은 배우들이 연기와 제작을 겸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밟은 뒤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가 지배하고 있는 충무로에선 배우 제작자들의 모습은 보기 힘듭니다. 우정과 야심으로 맺어진 정우성과 이정재 조합은 충무로에 어떤 바람을 불고 올까요.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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