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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칼럼] ‘위안부 재단 설립’, 서두를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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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열 칼럼] ‘위안부 재단 설립’, 서두를 일 아니다.

입력
2016.06.0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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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일본군 위안부 재단설립 준비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작년 12월 28일에 발표된 한일 외교장관 ‘합의’를 이행하기 위해서란다. 재단은 어떤 ‘합의’를 어떻게 이끌어내려는 것일까. 관련 기사를 살피고 준비위원장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봐도 실체파악은 쉽지 않다.

‘합의’ 이후 5개월간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일정부는 ‘합의’의 과정이나 내용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오히려 피해여성들의 비판과 반대,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청년들의 밤샘 노력,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추진 지원을 포기한 한국정부의 초라한 모습만 부각됐다. 거기에다 ‘합의’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일본 아베 총리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위안부를 강제연행 했다는 증거가 없으며 전쟁범죄가 아니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고, 일본이 부담한다는 10억엔은 배상금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한국정부의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지원 포기 소식에 일본은 외교적 승리라며 쾌재를 불렀지만, 8개국 14개 시민사회단체 등은 연대기구를 꾸려 지난 5월에 등재 신청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부끄러워했다는 말은 아직 없다.

‘소녀상 철거가 10억엔 출연의 전제’라는 일본 정부 관계자의 발언도 계속 흘러나온다. 일본이 10억엔을 두고 주판알을 튀기고 있는 동안, 한국정부는 ‘재단’설립을 서두르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업’을 시행하겠단다. 양국은 이런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되도록 하겠단다. 그런 ‘합의’에도 불구하고 지난 5개월간 일본이 ‘합의’를 ‘착실히 실시’했다는 증거가 없고, 한국 정부만 무엇에 쫓기듯 그 ‘불가역적’ 행위에 충실하고 있다. 이렇듯 현 시점에서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외면한 채 ‘치유’만 내세우고 있는 것이 한국 정부의 태도다.

피해자들은 애초부터 공식사죄 없는 지원금은 생각하지 않았다. 피해여성 김복동이 “우리들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며 오로지 명예회복을 위한 공식적 사죄와 배상을 요구할 뿐이다”고 공식사과를 요구하면서 ‘합의’와 재단 설립을 반대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한 술 더 떠 과거 식민지 지배 책임은 물론 전쟁 범죄 책임마저 부정하고 있고, 우익세력은 피해자 증언의 진위를 따지며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멈추지 않는다. 나아가 한국 정부와 민간을 이간시키려는 일본 정부의 꼼수마저 엿보인다.

일본은 유독 한국에 대해서는 ‘사과’라는 걸 거부한다. ‘을미사변’ 때 일제가 명성황후를 차마 말할 수 없는 방법으로 시해했지만 일본 정부는 처벌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은 고사하고 수만명의 동학군을 살해했고, 1907년 8월 이후 한국군이 해산된 상태에서 1910년까지 1만 7,000여명의 의병을 살해했지만 일본은 침묵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도 ‘일제 35년간’에 대한 사과 한마디 명기하지 않았다. 이번 ‘위안부’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피해자와 민간단체 및 국제적 요구가 치열했는데도 한국 정부는 그걸 지렛대로 활용, 사과를 받아내기는커녕 달랑 ‘10억엔’으로 피해자들의 자존심과 국제적 신뢰마저 팔아 버렸다.

일본의 국민기금을 반대하다 1997년 2월에 사망한 피해여성 강덕경은 “진실을 볼 때까지,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눈을 감을 수 없다”고 유언을 남겼다. 그러기에 일본과의 ‘밀약’을 근거로 피해자에게 상처 주고 사회 갈등의 불씨가 될 것이 뻔한 재단을 서두르는 것은 민주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먼저 일본의 ‘공식적인 사죄’를 받아내고 피해자 치유에 나서는 것이 순서다. ‘위안부’ 문제가 국내외적 관심사였기에 사죄의 수위도 국제적 정의인도의 기준에 바탕해야 한다. 이 일에 양국의 지성과 양심세력도 나서야 한다. 피해자들이 타계하기 전에 그들의 포한(抱恨)을 치유하는 것이 양국이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첩경이다.

숙명여대 명예교수ㆍ전 국사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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