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이 구조조정의 성패를 좌우할 용선료 인하 협상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5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최근 용선료 협상팀을 꾸리고 자문 로펌으로 영국계 프레시필즈(Fresh Fields)를 선정해 해외 선주와 본격적으로 용선료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제안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아직 어느 곳에서도 얻어내지 못했다.
프레시필즈는 이스라엘 컨테이너선사 '짐(ZIM)'의 협상에 투입됐던 법률 사무소다. 당시 짐은 해외 선사들과 2013년 협상을 시작해 2014년 7월까지 용선료 재협상을 진행했는데 세계 해운업계에서 흔치 않은 용선료 재협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앞서 현대상선이 주요 컨테이너선주들과 용선료 인하에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한진해운의 용선료 협상에도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이 타결된다 해도 한진해운의 협상이 곧바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현대상선은 1분기 말 현재 장기용선계약으로 컨테이너선 58척과 벌크선 29척을 빌려 운항하고 있다. 해운업 침체와 과당경쟁으로 운임이 낮아지면서 용선료도 따라 낮아지고 있지만, 한진해운은 현 시세보다 높게 용선료를 고정으로 지불하고 있다.
올해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지불해야 할 용선료 비용만 3조9,000억원에 이르고, 그 이후에도 장기 용선계약에 따라 1조4,000억원을 용선료로 지급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용선료가 매출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연간 약 15%에 달한다. 운임을 받아도 운항비와 용선료를 더하면 남는 게 없는 고비용 구조다.
장기용선계약은 운임이 비싼 시기에 빠른 속도로 선대를 확충할 수 있고 선박 건조에 따른 투자비 부담을 낮추는 장점이 있지만, 업황 부진으로 운임이 하락하게 되면서 장기계약이 고비용 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게 된 셈이다.
한편 최근 한진해운이 용선료 지급을 연체하면서 용선료 협상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한진해운이 용선료 1,160만달러(약 137억원)를 밀렸다는 사실을 시스팬이 공개적으로 밝힌 데 이어 지난 24일에는 나비오스가 용선료 체납을 이유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한진해운 소속 벌크선을 억류했다가 사흘 만에 억류를 해제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향후 용선료 연체 규모가 증가할 경우 추가적인 선박 억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한진해운의 용선료 연체액은 총 1,00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도 한진해운 측은 용선료 협상을 낙관하고 있다. 한진해운은 2일 여의도 본사에서 사채권자 집회를 위한 사전 설명회를 열고 용선료 협상 진행 상황 등을 공유했다.
한진해운은 용선료 협상 전망에 관한 투자자의 질문에 "현대상선의 협상이 잘됐는데 저희는 더 나은 상황이니까 잘 될 것으로 본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한진해운은 지난 4월 채권단에 조건부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 포기 각서와 경영정상화 방안을 담은 자구계획안을 제출한 바 있다.
자구안에서 한진해운은 자산매각 등으로 4,112억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채권단은 현대상선과 마찬가지로 한진해운에도 ▦용선료 인하 ▦사채권자 채무 재조정 조건을 충족하면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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