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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왜 ‘칸’은 한국영화를 많이 선택하지 않는가

입력
2016.06.03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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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오랜만에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오랜만에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개봉됐다. 또 이 영화는 2012년 이후 한국영화로서는 오랜만에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받았다. ‘올드보이’나 ‘박쥐’처럼 큰 상은 받지 못했지만, 류성희 미술감독이 벌컨상 (기술상)을 받았고, 전체적으로 평론가들의 반응이 좋았다. 칸 영화제에서 상을 받지 못했더라도 경쟁부문에 초청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한국영화가 경쟁부문 초청을 받지 못한 이유가 뭘까. 칸 영화제뿐 아니라 베를린영화제나 베니스 영화제에도 몇 년 동안 주요 경쟁부문에 한국영화가 초청받는 일은 거의 없다. 한국영화계가 능력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고, 한국만큼 영화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나라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영화계는 촬영이나 기술적인 부분에서 아시아 최고의 수준이란 평가도 받고 있다. 이점은 해외에서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 감독들의 능력이나 창의성이 부족해 해외영화제 초청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보다 한국영화계 시스템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 영화산업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자국 영화시장에서 훨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2015년 이탈리아에서 자국 영화 점유율이 21.6%였고, 할리우드 영화는 60%였다. 같은 해 한국의 자국 영화 점유율 52%였고, 할리우드 영화는 42.5%였다. 게다가 한국관객은 이탈리아 관객보다 극장을 찾는 횟수가 많다(사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경제적으로 한국영화가 이탈리아 영화보다 훨씬 성공적이다. 그래서 한국이 이탈리아보다 영화감독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영화는 칸이나 베를린 경쟁부문에 더 자주 초청받는다. 물론 문화적으로나 정서적인 면에서 가깝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탈리아에서 할리우드 영화 인기가 높다는 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탈리아 영화감독들은 “상업적으로 할리우드영화와 경쟁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긴 매우 어렵다, 대신 아주 독특하고 예술적으로 신선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제작자나 투자자도 이런 전략을 많이 지지하고 투자한다. 그리고 이탈리아 정부도 상업적이진 않더라도 예술적으로 흥미로운 영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한국의 분위기는 다르다. 한국영화가 할리우드 흥행 대작을 이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영화 투자자가 한국 영화감독들에게 거는 기대감이 다르다. 한국에도 독특하고 예술적으로 신선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감독들이 많다. 하지만 제작자나 투자자들은 관객이 많이 들어와야 한다는 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예술적으로 훌륭하다면 상업성이 약하더라도 성공한 영화라고 받아들인다. 그런 영화를 만든 감독들은 칭찬을 받고, 다음 영화에서도 비슷한 스타일을 추구한다. 정부도 그런 영화를 지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예술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라도 흥행에서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실패한 영화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예술성을 갖췄더라도 흥행에서 성공 못한 감독들은 다음 영화를 만들 때 어려움을 겪는다.

한국에서도 많은 감독이 좀더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저예산 독립영화를 찍는다. 또 훌륭한 독립영화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칸 영화제에서 주목 받고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던 이탈리아의 ‘그레이트 뷰티’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면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가 능력 있는 감독이 만드는 예술영화를 지원하는 거다. 한국에서 이런 영화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영화계는 아름답고 예술적으로 신선하고 해외에서 주목 받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달시 파켓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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