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6월 3일

호주 전 총리 토니 애버트의 2013년 총선 공약 중 하나는 매년 1주일간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 생활한다는 거였다. 원주민 지위 개선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는 2014년에는 북부 오지 안헴랜드 원주민 주거지에서 텐트 생활을 했고, 지난해에는 퀸즈랜드 북부 토레스해협의 머리(murray)섬을 방문, 호주 총리로는 최초로 원주민 운동가 에디 코이키 마보(Eddie Koiki Mabo, 1936~1992)의 묘소에 헌화했다. 그는 “마보는 오랜 시간 정의를 위해 싸웠고, 늦은 감이 있지만 그의 정의는 실현됐다”며 “그로 하여 호주인이 함께 전진할 수 있게 됐고, 이제 우리는 전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고, 당시 언론은 전했다.
6월 3일은 토레스해협 일대 섬 주민들이 기리는 ‘마보의 날’이다. 1992년 그날 호주연방최고법원이 원주민의 토지소유권을 인정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고, 그 소송을 이끈 게 마보였다. 마보는 판결 5개월여 전 암으로 별세했고, 호주 정부는 그해 말 ‘올해의 호주인’으로 그를 선정했다.
마보는 머리 섬에서 태어나 외삼촌 손에 자랐다. 그의 부족에게 땅은 조상들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거였고, 경계는 나무와 돌, 바위로 충분했다고 한다. 하지만 호주 백인 개척자들의 법은 주인 없는 땅(Terra Nullius)은 먼저 차지하는 게 임자라는 거였고, 원주민은 그들에게 ‘사람’이 아니었다. 토레스해협 섬의 땅들도 그렇게 백인들에게 빼앗겼다.
퀸즈랜드 제임스쿡 대학의 조경사로 일하며 독학한 마보는 74년 말이 통할 것 같은 대학의 역사학자들에게 부족의 땅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했고, 이런저런 토지권 관련 토론회에 나가 발언도 하게 된다. 그가 법률가들의 도움으로 백인 정부의 ‘테라 눌리우스’원칙에 도전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은 81년이었다.
10여 년간 공방을 벌이면서도 마보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한국외대출판부가 펴낸 책 ‘호주ㆍ뉴질랜드’ 등은 92년 법원이 “원주민 주권은 엄연히 존재하며, 그들도 토지 소유권의 주체일 수 있기 때문에 기존 법원의 기각 결정은 이유 없다”고 판결했다고 전한다.
마보의 무덤은 백인 총리의 헌화 전에도 후에도, 스프레이 낙서로 무덤을 더럽히거나 비석을 훼손하는 이들도 잦은 수난을 겪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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