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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세비 반납

입력
2016.06.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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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이 받는 보수를 세비(歲費)부르는 것은 정부 수립 다음해인 1949년 3월31일 제정된 법률 제23호 ‘국회의원 보수에 관한 법률’에서 유래한다. 여기에는 “국회의원에게 1인당 세비 연액 36만원을 지급한다”고 돼있다. 그런데 봉급 등 일반적 보수를 뜻하는 용어들을 놔두고 왜 세비라고 했을까. 사전상 세비의 뜻풀이는‘국가기관에서 한해 동안 쓰는 경비’ 또는 ‘국가기관에서 관료 등에게 지급하는 돈’이다. 국회의원 보수에 딱 들어 맞는 뜻이라고 보기 어렵다.

▦ 연원을 알아보니 1889년 2월 제정된 일본 제국 법률이다. 이 때의 일본법률 제2호 ‘의원법’(議院法) 조항에 중의원 의원 등은 ‘세비’를 받는다고 규정하면서 처음으로 이 용어가 등장했다. 1949년 법률 제정 당시 이 조항 용어를 그대로 차용한 것 같다. 일본 용어를 그대로 갖다 쓴 게 한 둘이 아니어서 새삼스럽지도 않지만 세비라는 용어는 일제 잔재의 하나인 셈이다. 1973년 7월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이 새로 제정되면서 법률에서는 세비란 용어가 사라졌지만 관용적으로는 여전히 널리 쓰이고 있다.

▦ 20대 원 구성 협상이 진통을 겪으면서 세비 반납이 뜨거운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원구성이 될 때까지 세비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킨다는 취지에서다. 19대 국회에서도 ‘무노동 무임금’원칙 차원에서 지각 개원 등의 경우 세비를 지급하지 않거나 삭감한다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여야를 막론하고 봇물을 이뤘다. 하지만 19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모두 폐기되고 말았다. 여론 뭇매를 모면하려는 정치 쇼 아니었나 하는 비판을 받을 만했다.

▦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세비 반납이 ‘일하지 않는 국회’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정치불신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세비 가지고 시비 거는 것이 제일 유치하다”는 말도 했다. 일하지 않고 세비만 챙긴다는 여론의 비판에 정면으로 대드는 형국이다. 그러나 전혀 일리 없는 얘기는 아니다. 그의 말대로 원 구성 협상중에도 많은 의원들이 입법준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은 지급하는 것이 맞다. 대중영합보다 실질을 지향하는 것이 진정한 국회 개혁이다.

이계성 논설실장 wk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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