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시민 발걸음 이어져
60여명 “재발 방지” 거리 행진
“우리 아이가 이렇게 생겼어요. 듬직한 아들이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
맡은 일만 묵묵히 해냈던 아들은 이제 영정사진으로 남았다. 일에 치여 사느라 성인이 된 후 변변히 찍은 사진도 없어 영정 속 아들은 여전히 앳된 고교생의 얼굴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또 다시 오열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안전문) 정비를 하다 숨진 김모(19)군의 빈소가 사고 나흘 만인 1일 저녁 서울 화양동 건국대병원에 마련됐다. 부모와 친척 등이 조촐히 지키고 있는 장례식장에는 어린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려는 친구, 동료와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일 오전 빈소를 찾은 김군의 고교 동창 김모(19)군은 영정 앞에서 흐느꼈다. 자신도 지난해 10월 은성PSD에 김군과 함께 지원하려다 이 회사에서 이전에도 사망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마음을 바꿨다고 했다. 그는 “왜 그 때 친구를 좀 더 만류하지 않았는지 후회된다”며 눈물을 흘렸다. 오후에는 김군의 고교 선생님들도 빈소를 방문해 가족들을 위로했다.
참담한 사고 소식에 생면부지의 일반 시민들도 빈소를 찾아 유족과 아픔을 함께 했다. 안승종(53)씨는 “젊은 시절 공사 현장에서 오래 일한 경험이 있어 남일 같지 않았다”며 조문했다. 2년 전 세월호 참사로 김군과 1997년생 동갑내기인 아이를 잃은 유경근 4ㆍ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등 유가족도 빈소를 찾았다.
천정배 국민의당 대표 등 정치인들도 발걸음을 했다. 유족들은 의원들에게 “꼭 진상 규명을 부탁한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전날 밤 빈소를 찾았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오후 시장 집무실에서 진행한 1인 방송 ‘원순씨 X파일’에서 안전업무를 전담하는 인력을 자회사가 아닌 서울메트로의 정규직으로 직접 채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김군의 평소 꿈이 기관사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인의)가족들이 동의한다면 명예기관사 자격증을 부여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서울메트로 측이 공식 사과하면서 빈소가 차려졌지만 유족들 마음에 난 생채기는 아물지 않았다. 김군의 이모는 “조카의 과실로 사고가 났다는 억울함이 풀어져 그동안 애써 주신 많은 분들을 위해 추모 공간을 마련 한 것”이라며 “장례식장이 아닌 분향소로 불러 달라”고 했다. 아직 장례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입관 및 발인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
한편 이날 김군의 친구를 포함한 시민 60여명은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거리 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오후 8시 국화와 촛불 등을 들고 사고가 발생한 구의역 9-4 승강장에서 출발, 건국대병원 장례식장까지 약 2㎞를 행진한 뒤 분향소에 헌화하고 유가족을 만나 애도의 뜻을 전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