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헌법재판소 위기를 둘러싸고 극우 집권당 법과 정의당(PiS)과 대립하던 유럽연합(EU)이 마침내 공식 제재절차에 돌입했다. 양측의 대립은 폴란드 정가는 물론 EU 내 급속히 확산한 ‘유럽회의주의’와의 정면 대결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프란스 팀머만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1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폴란드 당국에 ‘법치주의에 대한 의견서’를 보내기로 했다”고 밝혔다. 2015년 10월 총선에서 승리한 법과 정의당이 이끄는 폴란드 의회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켜 야권과 시민사회로부터 권력분립의 원칙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법과 정의당은 집권 직후인 지난해 11월 이전 의회가 임명한 헌법재판관 다섯 명의 임명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성향에 맞는 재판관 다섯 명을 새로 뽑았다. 또 12월 법률 개정을 통해 의회ㆍ대통령ㆍ법무부가 헌법재판관의 해임을 건의할 수 있는 권한을 쥐게 됐다. 폴란드 헌재는 올해 3월 이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판결했으나 정부는 헌재의 결정을 무시했다.
이에 EU는 올 1월부터 폴란드에 법치주의 회복을 요구하며 협상에 돌입했다. 하지만 베아타 시드워 폴란드 총리는 “이 문제는 폴란드의 독립된 주권으로 결정할 문제”라며 개혁을 거부해왔다. 양측은 여전히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만 외신들은 1일 나온 EU의 의견서가 사실상 제재 직전 내리는 최후통첩이라고 보도했다. 폴란드는 2주 이내에 개선방안을 EU에 제출해야 하며 개선방안이 EU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EU는 직접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EU는 법과 정의당의 언론 장악 의도도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법과 정의당은 언론개혁을 구실삼아 공영방송의 사장을 해임하고 후임을 지명할 수 있는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귄터 외팅어 EU 디지털경제 담당 집행위원이 “폴란드 법치 제도에 대한 감사가 필요하다”고 발언하자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법과 정의당 대표는 “(한때 폴란드를 강점한) 독일인(외팅어)의 말이 우리의 길을 막을 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EU 집행위의 이번 결정은 시드워 총리의 폴란드가 같은 유럽회의주의 성향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헝가리를 좇아 급격하게 우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2010년 당시 오르반 총리가 언론을 장악하고 시드워 총리처럼 주권독립을 내세우자 EU에서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것이 ‘트라우마’로 작용하면서 EU 집행위가 강경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시드워 총리와 오르반 총리는 이미 2월 초 EU 주류의 난민 유화책에 반발하는 ‘반난민 연대’를 형성한 바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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