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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잊을 만하면 ‘위작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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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잊을 만하면 ‘위작 스캔들’

입력
2016.06.02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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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이 소유한 '미인도'. 천경자 화백이 1991년 자신의 작품이 아닌 위작이라 밝힌 후 25년째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유한 '미인도'. 천경자 화백이 1991년 자신의 작품이 아닌 위작이라 밝힌 후 25년째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 천경자 화백. 한국일보 자료사진
고 천경자 화백.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별세한 천경자 화백의 차녀 김정희씨가 지난 4월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비롯한 ‘미인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민ㆍ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 작품은 작가가 1991년 4월 위작을, 작품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이 진품을 주장하며 시대의 스캔들이 됐다. 8년 뒤 ‘미인도’를 자신이 그렸다는 위조화 전문범까지 나타나며 공방이 이어졌다. 그 위조범이 최근에는 “(미인도는)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다른 말을 하자 유족측에서 논란의 매듭을 짓겠다고 나선 것이다. 위철환 오욱환 변호사 등과 함께 공동 변호인단에 참여하고 있는 김씨의 법률대리인 배금자 변호사는 한국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이 사건은 현재까지 발생한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소송”이라고 밝혔다.

국내 미술계의 위작 논란은 이것만이 아니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이우환 화백도 위작 문제에 얽혀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경찰청의 인사동 화랑 수사에서 이 화백의 연작 ‘점으로부터’의 일부 작품에 대해 위작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두 달 뒤 K옥션 경매에서 낙찰된 ‘점으로부터 No. 780217’의 감정서 조작이 밝혀졌다. 이어 지난 2월 경찰이 압수품 12점을 감정하자 모두 ‘위작’으로 판명이 났다.

국내 미술품 위작은 두 사건처럼 화단의 대형스캔들로 불거진 경우 말고도 소소한 경찰조사, 의혹 제기까지 포함하면 “팔리는 작가라면 다 있다”고 할 만큼 비일비재하고 고질적이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가 쓴 책 ‘미술품 감정학’을 보면 영국 경매회사에서 판매되는 미술품의 15%, 인상파 화가 작품의 최소한 10%를 위작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해외라고 위작이 없지는 않지만 국내는 사정이 심각하다. 유통되는 그림 중 위작 비율이 이보다 훨씬 많고, 갈수록 조직적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우홍 한국화랑협회장은 “수준 떨어지는 한두 점이 나온다면 심각하게 문제 삼을 것이 안 되지만 최근에는 전문화된 조직이 거의 (원작과)구별이 안 될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 대량 유통한다”고 말했다.

한국미술감정평가원에 따르면 2003년 25%였던 위작 비율은 이중섭 박수근 위작 사건이 벌어진 2006년, 박수근 ‘빨래터’ 진위 논쟁이 벌어진 2008년에 각각 19%, 21%로 뚝 떨어졌다가 2009년 24%, 2010년 27%, 2011년 34%, 2012년 32%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2년까지 10년간 평가원이 감정 의뢰 받은 5,130점 중 26%(1,329점)가 위작 판정을 받았다.

10년간 위작 판정률이 가장 높은 작가는 이중섭 화백으로 58.8%(187점 중 108점)에 달했다. 박수근 작품의 위작률은 38%, 천경자는 30.3%였다. 김환기 작품의 위작률은 25%로 비구상작가의 평균인 17%를 웃돌았다. 단적으로 말해 돈 되는 작가가 위작도 많다. 단색화가 뜨기 전인 2003~2012년 이우환 작가의 위작 판정률은 4%에 불과했다. 2003년 감정평가원이 설립되기 전 국내 근현대미술 감정을 도맡았던 화랑협회 산하 미술품감정위원회의 1982~2005년 집계에서 이우환은 노수현, 문신, 오승우, 이성자와 함께 위작률 ‘0’ 작가였다.

지난해 12월 K옥션 경매로 나온 이우환 '점으로부터 No. 780217'. 감정서 조작이 밝혀져 서울지방경찰청에 압수됐고, 작품을 감정한 최명윤 교수는 '위작'으로 판정했다. K옥션 제공
지난해 12월 K옥션 경매로 나온 이우환 '점으로부터 No. 780217'. 감정서 조작이 밝혀져 서울지방경찰청에 압수됐고, 작품을 감정한 최명윤 교수는 '위작'으로 판정했다. K옥션 제공
이우환 화백.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우환 화백.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 같은 위작 유통 실정은 국내 미술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위작을 양산하는 미술계의 문제로는 ▦경매회사와 특정 화랑이 유착돼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구조 ▦공인감정기구 없는 상업화랑 중심의 감정 ▦작가 이력에 대한 데이터 부족 ▦유통환경의 불투명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화랑 대표가 경매회사를 소유하는 것은 한국식의 기형적인 풍토다. 국내 양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과 K옥션은 각각 가나화랑, 현대화랑을 모체로 하고 있다. 서울옥션은 이호재 가나아트 회장을 비롯한 장남 정용씨, 차남 정봉씨에 이 회장의 손자까지 가족 및 친인척이 지분 33.64%를 보유하고 있다. 비상장사인 K옥션 역시 현대화랑 박명자 회장의 장남 도현순씨와 박 회장의 남편 도진규씨 등 가족이 지분의 과반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계 한 인사는 “화랑이 경매회사를 가지면 경매를 통해 화랑 소속 작가들의 작품 가격 조작과 담합이 얼마든지 가능해진다”며 “현대나 가나 같은 굴지의 화랑이 아트바젤 같은 해외 행사에 초청받지 못하는 이유가 이‘기형적인 구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작품의 진위와 가치를 검증할 감정기관도 모두 화랑 관계자들로 구성된다. 최병식 교수의 ‘한국미술품 감정 중장기 진흥 방안’(2006년)에 따르면 감정평가원과 고미술협회, 화랑협회 소속 근현대미술 상임 감정위원 32명 중 학자는 9명, 과학감정가 1명으로 나머지 22명이 화랑ㆍ경매회사 운영자, 표구 전문가 등 미술시장 종사자였다. 2007년부터 화랑협회와 미술품감정협회가 통합돼 국내 거의 모든 근현대 미술품을 감정한다는 점, 국내에서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근현대 미술품 감정위원을 여전히“20~30명 수준”으로 꼽는다는 점에서 이런 상황은 지금도 여전하다. 프랑스의 경우 감정가 수가 3,000명에서 최대 1만2,000명으로 추산되는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회당 20만~30만원의 감정료를 받으면서 감정한 작품이 위작 시비로 불거질 경우 소송 등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감정위원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미술품의 진위 판단을 전적으로 이들 소수의 경험적 지식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은 문제다. 미술평론가 홍경한씨는 “안목 감정에 치우치는 행태가 적지 않다는 점이 (위작이 느는)원인이 될 수 있고, 옥션 등에서 위작이 출현해도 감시와 제재가 불가능한 제도적인 문제도 있다”며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학계 커리큘럼이 부족하다는 점도 위작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진품의 원본 감정서가 유실된 경우가 많고, 감정서를 쉽게 재발행해주는 관행도 문제로 꼽힌다. 박우홍 회장은 “외국의 경우 어느 화랑이 감정했고 어느 전람회에 출품됐고 누가 소장했다는 이력이 작품마다 따라 붙는다”며 “개인 간 거래가 많아 유통망이 불투명한 국내의 경우 이런 이력 근거가 대단히 취약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비용을 지불하고 진품임을 확인 받으면 감정서를 재발행해주기 때문에 감정서 위조가 쉽다. 위조범들은 진품 감정서 재발행을 요구한 후 이를 조작해 위작 작품 감정서로 둔갑시킨다는 것이다.

미술계는 위작 확산에 대처하기 위해 주요 작가의 작품을 관리할 재단 설립과 전작 도록 제작, 감정인력 양성 등 방안을 줄곧 거론해왔다. 하지만 실행은 느려터지기만 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그나마 올해 박수근, 이중섭의 전작 도록을 제작하기로 한 것이 고작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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