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행기가 가끔 사고를 일으킨다고 마법의 양탄자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최근 발행된 과학잡지 스켑틱 6호는 ‘음양오행과 사주’특집을 선보였다. 이지형 작가는 ‘음양오행이라는 거대한 농담’이란 글을 통해 음악평론가 강헌, 고전평론가 고미숙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강헌은 지난해 ‘명리, 운명을 읽다’(돌베개)를 내놓으면서 명리학을 “합리적 학문”이라 부르고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고미숙도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북드라망)를 내놓고 사회과학 담론에서 빠져 있는 자연과 우주를 운명에 관한 음양오행론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작가는 해가 바뀌거나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사주를 뽑아보는 정도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고 본다. 인간에게는 신비한 것에 대한 욕망이 있으니 이런 행동에 대해 정색하고 ‘잘못됐으니 지금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 작가 스스로도 사주, 풍수 등을 10여년간 공부해 이런저런 책을 펴낸 저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작심 비판에 나선 것은 “역사적 맥락에서 또는 재미의 측면에서 취급하고 말면 될 일”을 일군의 지식인 또는 인문학자들이 마치 엄청난 비법이 숨어 있는 것인양 쓸데 없이 판을 키워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파서다.
이 작가가 거듭 지적하는 건 ‘자의성’이다. 주역의 64괘의 모양, 명칭간 관계도 자의적이고, 괘와 해석간 관계도 자의적이다. 유학자들이 붙인 10개의 해석을 거창하게 ‘10익(翼)’이라고 부르지만, 이 해석 역시 자의적이다. 이래저래 뜯어보면 “유학자들의 주옥 같은 처세와 수신의 방편이 담겨” 있긴 하지만 “왜 15번째 ‘지산겸’ 괘가 겸손을 뜻하는 ‘겸’의 괘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근거 따윈 없다”는 얘기다.
세상을 나무, 불, 흙, 쇠, 물로 분류한 오행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오행론이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경쟁적 이론 체계 없이 과학과 철학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하다 보니 계절, 색, 방위 등 안 끼어드는 데가 없다. 이 또한 뜯어보면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 작가는 인문학자들이 음양오행, 주역, 명리학 등을 드높이는 것은 “비주류 문화 콘텐츠를 쉽게 해설한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라면서도 그것을 “인문학과 지식의 새로운 형식으로 격상”시켜서는 안 된다고 못박는다.
이어 안상현 한국 천문연구원 이론천문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역법이 달라지면 운명도 달라지나’라는 글을 통해 사주의 문제를 추적한다. 사주의 기초는 연월일시(年月日時). 그렇다면 달력, 곧 책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과학이 미숙하던 때다 보니 일단 이 책력 자체가 부정확하다. 거기에다 조선시대만 해도 원이 개발한 ‘수시력’, 명이 개발한 ‘대통력’, 조선이 자체적으로 만든 ‘칠정산’, 명이 아랍에서 수입한 ‘회회력법’, 청이 개발한 ‘시헌력’ 등이 다양하게 쓰였다. 그러면 부정확한 책력이 바로잡히고, 책력이 바뀔 때마다 마침내 사람의 운명이 바뀌었던가. 안 선임연구원은 사람이라면 운명에 관심을 기울일 수는 있지만 “출판의 암흑기에도 점술서, 역술서, 그리고 역술의 기본재료가 되는 민간 책력은 수만부가 팔리는 기현상이 벌어진다면 이는 큰 사회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선진 스켑틱 편집장은 “음양오행, 사주, 명리학 등의 유행이 혹시 선을 넘진 않았는지, 과학잡지의 관점에서 한번쯤 확인해보자는 차원에서 기획했다”고 말했다. 6호는 이외에도 뇌과학과 도덕감정 문제, 비디오게임과 범죄간 관계 등을 다뤘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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