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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난 박원순의 “쪼잔한” 정치가 좋다

입력
2016.06.02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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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박원순은 서울시장이 제격이다”라고 평한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박 시장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아기자기한 정책을 만들고, 불편한 제도를 개선하며, 부지런히 현장을 누비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시장의 행보에 사람들은 놀랍고, 새롭고,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까지다.

이유를 물으면 무릇 큰 꿈을 꾸는 정치인이라면 국가의 원대한 비전을 보여주고, 결선투표제와 같은 중요한 정치적 발언도 하고, 외교와 대북문제에 대한 식견도 보여주어야 하는데 박 시장에게는 도무지 그런 정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생활정치에 골몰하는 박 시장의 모습에서 원대한 비전을 찾기는 쉽지 않다. 좋은 시장이지만, 대통령이 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이런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세상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지난 5월부터 박 시장은 광주·전남 방문을 시작으로 광폭 정치 행보를 하고 있다. ‘나는 쪼잔한 정치인이 아니에요,’ ‘나도 대통령이 될 수 있어요’라고 외치는 것처럼. 언론은 일제히 박 시장이 대권행보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물론 박 시장은 서울시민의 민생문제에 전념하겠다며 자신의 언행을 대권행보로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래, 어쩌면 우리는 박원순 대통령이 아닌 박원순 시장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박 시장 본인도 시민운동 출신의 순수한(?) 사람이니 생활정치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측근들도 박 시장이 시장으로 있는 한 밥걱정 안 해도 되니, 대권을 좇는 것 보다 시정에 전념하는 것이 박 시장도 좋고, 측근들도 좋은 일 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대선후보 지지율에서도 유력 후보들에게 밀리고 있으니 안전한 3선 시장을 선택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추측이 사실이라면 박 시장과 측근들은 국민의 마음을 크게 오독하는 것이다. 국민이 원하는 정치는 무책임하게 큰 공약을 남발하고, 국민의 생활과 무관한 권력다툼을 일삼고, 친O, 비O, 반O(으)로 계파를 나누어 싸우는 그런 정치가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정치는 육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모에게 좋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수당과 일자리를 제공하며, 시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하고, 어려움에 처한 시민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는 정치다.

국민의 눈으로 보면 박 시장의 최근 행보는 박 시장답지 않다. 박원순식 생활정치를 버리고 권력다툼의 구(舊)정치의 길로 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박 시장이 구정치에 미련을 두지 말고 박원순식 생활정치를 지키기를 원한다. 그렇다고 시정에만 파묻혀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박 시장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생활정치로 기성정치권과 진검승부를 대차게 하라는 것이다. 왜 청년수당이 필요한지, 왜 전월세난이 해결되지 않는지, 왜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가 늘어만 가는지, 왜 지역과 계층 간 격차가 벌어지는지, 시장이 하고 싶어도 잘못된 중앙정치로 인해 할 수 없었던 민생의 문제를 전면에 내걸고 중앙정부와 기성 정치에 담대하게 맞서라는 것이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왜 주저하는가.

동사무소를 주민의 복지와 민주주의의 장으로 바꾸고, 시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해주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국공립보육시설을 확대하는 정책은 쪼잔한 정치가 아니다. 정치는 민생을 전면에 내걸고 누가 더 민생을 잘 돌보는지 경쟁하고, 싸우는 것이다.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괜찮은 공적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좋은지,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를 양산하는 것이 좋은지, 시장과 국가 중 누가 보육과 노인 돌봄 등과 같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좋은지, 복지확대를 위해 증세해야 하는지, 계파를 만들어 박 터지게 겨뤄보라는 것이다. 국민은 그런 정치를 원하고, 그런 정치가 쪼잔한 정치라면 난 쪼잔한 정치가 좋다. 새 정치와 좋은 정치는 그런 쪼잔한 정치이기 때문이다.

윤홍식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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