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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덕 칼럼] 오바마와 히로시마

입력
2016.06.0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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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전 세계의 이목이 원폭 투하 71년 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미 대통령의 히로시마(廣島) 방문에 쏠렸다. 특히 피폭 희생자들을 위한 오바마의 묵념, 그리고 그가 유려한 문장으로 전달한 평화와 반전(反戰) 메시지에 대한 반향은 컸다. 일견, 이는 그 직전의 베트남 방문(그리고 그 전의 쿠바 관계 개선)과 함께 미국 외교사의 획기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외관상 변화보다 사실 더 두드러지는 것은,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미국 동아시아 정책의 일관성 및 연속성이다.

일본은 나치 독일과 더불어 제2차 대전의 주 전범국이다. 그 규모는 나치의 범죄에 미치지 못할지 모르나, 일본의 만행은 모 역사가가 15년 전쟁(1931~45)이라 명명했던 시기에 걸쳐서, 즉 더 오랜 기간 자행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종전 후 독일만큼의 전범 취급을 당하지 않았다. 독일의 경우, 혹독했던 전범 재판 과정과 함께, 거대한 영토 상실, 1,300만에 달하는 독일계 주민의 강제 이주,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토 분단이 뒤따랐다. 그들은 자신의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과정도 거쳤으며, 이는 현재에도 진행 중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쿠릴 열도와 러일전쟁 직후 그들이 획득했던 사할린 남부를 소련에 반환한 것이 영토 손실의 전부였다. 자연히 주민의 재배치도, 일본 국민국가의 재편도 없었다. 그리고 분단은 일본 열도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이루어졌다. 종전 50주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시작된 전쟁책임 사죄 역시 독일 수준으로 철저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범 일본이 받았던 이 같은 ‘가벼운’ 처벌은 미국의 전후 동아시아 정책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45년 8월 종전 직후, 일본 열도를 점령한 미군은 국무부의 지시 아래 당초 제국 일본의 이념, 정치 제도, 대내외 경제 체제 등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 국무부는 특히 군부, 재벌, 대지주 등 전쟁을 일으켰던 핵심 세력들을 철저히 응징하면서 일본의 경제력을 약화시켜, 그들이 다시는 군사적 부활을 꿈꾸지 못하게 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냉전이 본격화되던 1947년, 그 정책 기조는 갑자기 변했다. 일본의 경제를 되살려 그들을 인도차이나 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경제권의 핵심부로 삼는다는 계획이 우위를 점한 것이다. 이 경제권이 소련의 팽창을 막는 방파제가 됨과 동시에, 미국의 상품 시장 및 자본 수출의 공간으로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이 ‘역코스(the reverse course)’에 당시 미국 최대 상업은행 중 하나인 케미컬은행 총재 존스턴(Percy Johnston)과 월스트리트 관련 인물 덜레스(John Foster Dulles)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역코스’가 실행에 옮겨지면서 일본인 주요 전범들은 하나둘씩 석방되기 시작했다.

이런 미국의 일본 살리기 정책 속에서, 과거에 대한 뼈저린 반성은 일본 정부가 아니라, 오로지 일부 양심적 지식인들과 민간단체의 몫이 될 뿐이었다. 되레 정부와 우익들은 전범국에는 도저히 걸맞지 않은 행보들을 자주 펼쳤다. 그들이 나름(?)의 역사적 근거를 들이대며 동북아 각국과 벌이는 ‘영토 분쟁’들은 그 두드러진 예이다. 사실, 전범에게는 영유권 주장을 위한 역사적 근거라는 것이 애초부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철저한 전범 심판의 결과로, 그들 국가의 역사적 기원지인 ‘프로이센’ 지역을 내놓게 된 독일의 경우를 떠올린다면 말이다.

베트남에서 일본으로 이어졌던 이번 오바마의 행보는 이제는 소련을 대신한 중국세의 확장을 견제함과 동시에 일본을 축으로 하는 동아시아 경제권을 다진다는 실리적 계산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는 냉전 개시 이후 미국 정부가 추진해 온 동아시아 정책과 연속선상에 있다. 그 선상에서 미국은 1947년처럼 2016년에도 일본을 전범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일본이 그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전범 의식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오바마가 평화와 반전에 진정 뜻이 있었다면, 이제라도 일본을 전범으로 확실히 규정하고 그 책임을 엄중히 묻는 태도가 필요했다. 동시에 그는 원폭 희생자들에 가했던 미국의 전대미문의 폭력에 대해서 사죄도 했어야 했다. 전범국 일본에 대한 국가 대 국가의 정치적 사죄가 아니라, 그의 표현처럼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인도주의 차원의 사죄 말이다. 어쨌든, 오바마의 이번 히로시마 방문이 미국 국익에 기여한 바는 크다. 그는 사죄가 아닌 애도를 통해, 미국의 민간인 폭격에 대한 정당성을 부정하지 않는 동시에, 세계사 유일무이의 원폭 가해자라는 찜찜한 도덕적 짐을 덜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 동아시아 정책의 실리까지 챙겼다. 한편, 일본 정부는 그 덕에 자신들만을 위한 ‘과거청산’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다만, 이 모습들에서 두 나라 국익 이상의 것, 즉 평화와 반전의 가치를 발견할 수는 없다.

광주과학기술원 교수ㆍ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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