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세계적 수주절벽 탓
법원 기대와 달리 회생 어려울 것”
채권단 자율협약 아래 있던 STX조선해양을 넘겨 받게 된 법원이 “채권단의 잘못된 판단으로 4조4,000억원의 자금이 무용하게 소모됐다”고 직격탄을 날린 데 대해 채권은행들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는 금융권과 법원의 오랜 갈등이 STX조선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앞서 STX조선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을 받은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전날 보도자료를 내고 산업은행 등 STX조선 채권단을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법원은 “미국의 GM이나 크라이슬러 구조조정 성공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조기에 회생절차를 신청해 채무조정과 저가수주계약 해지와 설비 감축 등을 했다면, 자율협약에 투입된 4조4,000억원보다 훨씬 적은 자금으로 회생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법원 관계자는 “자율협약 때도 저가 수주가 지속돼 지원 자금 중 3조원 가까이가 건조 손실로 사라진 것으로 안다”면서 “앞으로 채권단의 책임 여부도 들여다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회생절차 중심으로 기업구조조정 절차를 일원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구조조정에서 법원이 주도권을 쥐겠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법원은 또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을 통한 구조조정에서 채권금융기관이 퇴직 임원 등 비전문가를 회사에 파견해 회사의 원활한 회생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며 산업은행 등의 ‘낙하산’ 투하 관행을 정면 비판하기도 했다.
채권단 일각에선 불만이 상당하다. 채권단 관계자는 “STX조선이 망가진 것은 전세계적인 수주 절벽 때문”이라며 “법원이 구조조정 국면에서 영향력 확대를 위해 무리한 주장을 편다”고 말했다.
STX조선의 회생 가능성에 있어서도 법원과 채권단은 온도 차를 드러냈다. 법원은 “현재로서는 청산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회생 가능성에 무게를 실은 반면 채권단 측은 회생 가능성을 상대적으로 낮게 본다. 채권단 관계자는 “회생절차 아래서 금융기관 자금지원이 완전히 끊겨 앞으로 신규 수주가 불가능하고 기존 수주를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면서 “SPP조선조차 매각이 어려운 상황에서 법원이 바라는 인수합병(M&A) 시나리오 역시 실현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날 STX조선의 발주처 중 하나인 프론트라인이 STX조선에 주문한 원유 운반선 4척의 취소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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