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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의 “과장된” 부고

입력
2016.06.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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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6월 2일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

발자크가 도박과 사업에 판판이 망해 빚쟁이에 쫓겨 다니며 글을 썼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도스토예프스키도 형편없는 승률의 도박꾼이었다. 또 한 사람, 마크 트웨인(Mark Twain, 1835~1910)의 도박은 발명이었다. 유아 침대 부속, 개량 허리띠, 식자기계, 새로운 증기 엔진, 신형 인쇄기…. 글로 번 돈 대부분을 발명에 쏟아 부으면서 그도 빚에 시달렸다. 서부 금광시대에는 덜컥 땅을 사들여 금도 캐봤지만 역시 헛일. 열성 반제국ㆍ반식민주의자이자, 인종ㆍ여성 차별 반대론자였던 그가 1897년 6월, 당시 유명했던 렌돌프 허스트의 황색 신문 ‘뉴욕저널’에 특파원으로 채용돼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 50주년 기념식 취재를 간 것도 돈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 최대 일간지 ‘뉴욕 헤럴드’가 마크 트웨인의 사망 소식을 보도한 게 그가 런던에 머물던 그 해 6월 1일자였다. “(61세의 트웨인이) 중병에 걸려 아마도 숨진 듯하다. 더 참담한 것은, 그의 빼어난 지성이 오직 돈 때문에 망가졌다는 소식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뉴욕저널에, 그것도 여왕의 영광에 대해 글을 쓰려 한 사정을 그렇게 표현한 거였다.

하지만 소문은 와전된 거였고, 보도는 오보였다. 다음 날인 6월 2일자 뉴욕저널은 ‘마크 트웨인이 재미있어했다(Amused)’는 제목을 달아 헤럴드에 반격했다. 트웨인 특유의 신랄하고도 유쾌한 대꾸도 인용했다. “나의 죽음에 대한 기사는 대단히 과장됐다(greately exaggerated).” ‘대단히’라는 부사는 신이 난 허스트가 덧붙인 거라는 설, 다시 말해 뉴욕저널이 ‘과장 보도’를 했다는 설도 있다.

미국의 저널리즘 학자 조셉 캠벨에 따르면, 트웨인이 돈을 벌기 위해 여왕 재위 50주년 행사 취재는 했지만, 허스트의 구미에 맞게 기사를 쓴 것 같지는 않다. 그는 “트웨인은 그 행사의 화려함에 압도 당했지만(…) 그 스펙터클은 ‘코닥(카메라)’을 위한 거였지 펜을 위한 건 아니었다.(…) (행사는 대영제국의) 최후의 날을 암시하는 알레고리처럼 보였다’고 썼다”고 전했다.

그의 마지막 소원은 핼리혜성과 함께 떠나는 거였다고 한다. 그는 혜성이 지구에 근접하던 1835년 11월 30일 태어나, 혜성이 다시 지구를 스쳐간 1910년 4월 21일 별세했다.

최윤필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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