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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올라서며 '한 개비'.. 담배연기 여전한 지하철 출구

입력
2016.06.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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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연표지 코앞서 삼삼오오 흡연

단속 나오면 경계 밖으로 한 발짝

서울 흡연부스 26개소에 불과

애연가들 “흡연 공간부터 늘려라”

서울역 출입구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는 시민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서울역 출입구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는 시민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1일 오후 지하철 서울역 9번 출구 앞. 임모(34)씨는 출구 계단을 다 올라오기 무섭게 주머니를 뒤적여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하철역 10m 이내는 금연구역인지 아느냐’고 묻자 임씨는 “몰랐다”고 멋쩍게 웃으며 조금 더 떨어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리를 이동한 그는 “출구와 가깝기는 마찬가지인데 이 곳은 되고 출구 근처는 안 된다는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며 담배 개비에 불을 붙였다.

서울시가 간접흡연 등을 방지하기 위해 시내 모든 지하철역 출입구 10m 이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지 1일로 한 달이 됐다. 하지만 역 주변은 여전히 담배 연기로 뒤덮여 속칭 ‘너구리 굴’을 방불케 했다. 시와 25개 구의 꾸준한 지도ㆍ단속에도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인식과 함께 단속을 피하기 위한 꼼수까지 등장하면서 금연구역 지정 조치의 실효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서울역을 비롯한 지하철 삼성역과 강변역, 고속터미널역 등 유동인구가 많은 역사 출입구에서 흡연하는 사람들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출입구 벽과 계단에 붙어있는 금연구역 표지는 무용지물이었다. 심지어 출입구 전후방 10m 지점 바닥에 부착된 붉은색 금연 스티커는 행인들의 발길에 더러워져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낮 12시 삼성역 3ㆍ4번 출구 사이에는 점심시간을 맞아 양복 차림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금연 지도원이 다가와 “이곳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지적해도 그 때뿐, 지도원이 사라지자 이내 다시 새 담배를 꺼냈다. 회사원 이모(33)씨는 “늘 단속하는 것도 아니고 설령 적발돼도 ‘운이 나빴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금연구역 지정이 오히려 흡연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금연 표시구역 경계선 바깥에서 담배를 피울 경우 단속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금연지도원 정모(52)씨는 “금연구역 사실을 고지했을 때 수긍하고 끄고 가면 다행”이라며 “몇 걸음 걸어가 보란 듯이 담배를 피우면 사실상 제지할 방법도 없다”고 토로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반면 흡연자들 사이에서는 흡연권은 무시한 채 당국이 금연구역만 확대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많다. 남한테 피해주지 않고 담배 피울 곳 하나 마련해주지 않으면서 규제만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연구역은 1만2,000곳이 넘지만 흡연부스는 개방형 17곳, 폐쇄형 9곳 등 26개소에 불과하다. 고속터미널역에서 만난 강현(40)씨는 “보통 대중교통 이용을 마치고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가 많은데 지하철역 근처에선 흡연실을 찾아보기 어렵다”며 “간접흡연의 폐해를 경고하기 전에 흡연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여러 연구 결과와 사례를 종합해 나온 대책인 만큼 지하철 출입구 금연구역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예산 상 문제로 단속 인력이 충분치 않아 단속이 어려운 것은 맞지만 국민 건강을 위해 금연구역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흡연시설을 확대할지 여부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성규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년 전 식당 내 금연이 처음 시행됐을 때도 잡음이 많았으나 이제 어느 정도 정착이 됐다”며 “지하철역 금연구역도 일부 제도 보완이 이뤄지면 중장기적으로 인식이 개선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하철역 출입구 금연구역은 4개월의 계도 기간을 거쳐 9월 1일부터 흡연 적발 시 최고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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