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보좌진은 밖에서 보는 것처럼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라는 게 현직 보좌관들의 한결 같은 이야기다. 입법 지원, 행정부 견제, 선거 등 거창한 업무 이면의 ‘그늘’에 대해서도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직 보좌직원들이 가장 문제로 꼽는 점은 직업으로서의 안정성이다. 국회의원은 임기가 최소 4년이지만 보좌진의 임기는 보장되지 않는다. 언제 어떤 이유로 잘릴지 알 수 없다. 4, 5급 직원에 대한 면직은 국회의장, 6~9급은 국회 사무총장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고 있지만 형식적 절차일 뿐, 의원이 국회사무처에 면직요청서 한 장 제출하면 그걸로 끝이다. 안정곤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장은 “근로기준법상 면직예고도, 면직유예기간도 없이 종이 한 장이면 해고가 가능하다”며 “보좌진 운명은 파리 목숨이나 다름 없다”고 말했다.
의원이 보좌진을 해고할 때는 보통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든가 ‘일을 같이 못하겠다’는 식의 이유를 댄다. 심지어 의원에 밉보였다는 이유로 총선 선거운동 기간이 끝나자마자 해고되는 경우도 있다. 새누리당의 한 비서관은 “가족과 떨어진 채 지방에서 하루 3, 4시간씩 자면서 박빙의 총선을 치렀지만 영감(의원을 일컫는 속칭)이 ‘딴 방을 알아보라’고 했다”며 “더 황당한 것은 명확한 해고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고 사실을 미리 알려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한 보좌관이 출근 길에 국회 주차장 출입문이 열리지 않아 주차관리사무소에 따지자 ‘등록되지 않는 직원’이라는 이야길 듣고 자신이 해고된 사실을 파악했다는 일화는 보좌진 사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국회의원 보좌직원의 업무가 전문화하고 있지만 의원들은 여전히 ‘멀티플레이어’ 역할을 요구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4급 보좌관의 경우 정책보좌관과 정무보좌관으로 나뉘어 있지만 많은 의원들은 여전히 두 일을 함께 소화하길 기대하다. “국회선진화법 등장으로 로텐더홀에서 더 이상 의원을 대신해 주먹다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정도가 위안이라면 위안”이라고 한 보좌관은 말했다.
보좌직원의 기본 업무는 지역구 민원 상대, 각종 기고문과 연설문 초안 작성, 의정활동 보고서와 정책홍보물 제작 등이다. 하지만 이에 더해 의원의 ‘종’노릇까지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의원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 빨래, 개 밥주기에 보좌직원이 동원됐다거나 의원 사모님의 허드렛일까지 전화로 지시를 받은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새누리당의 한 보좌관은 “사실상 의원을 두 분 모시고 있는 셈이지만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다”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결국 최근 방을 옮겼다.
이 밖에도 보좌진 사이에선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가질 생각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유익하다는 자조가 퍼져 있다. 월급이 떼이거나 심지어 의원에게 구타를 당했다는 증언도 적지 않다. 법을 만드는 곳이지만 법이 가장 지켜지지 않는 곳이 국회인 셈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문화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은 의원이 의원실에서 제왕적 권력을 누리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영감 비유 잘 맞추는 ‘심기 경호’에 능하고, 대인 관계 좋고 맷집 좋은 직원이 결국 살아 남는다”는 게 한 비서관의 솔직한 고백이다.
힘들어도 보람을 찾을 수 있다면 그래도 버틸 수 있을 터. 하지만 보좌진은 ‘그림자 인생’‘조연’의 삶을 살아야 한다. 모든 땀과 노력이 의원 이름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올해로 27년째 의원들을 보좌하고 있는 한 보좌관은 “모시는 의원의 입법 활동에 자신의 철학을 반영시키면서 보람을 느낄 수도 있지만 밖에서 보는 것보다 몇 배는 힘들다”며 “후회를 줄이려면 투신 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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