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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 "한국 문학의 주제는 인간과 현실의 부정 교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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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 "한국 문학의 주제는 인간과 현실의 부정 교합"

입력
2016.06.0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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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1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에서 열린 강연에서 한국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한프랑스대사관 제공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1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에서 열린 강연에서 한국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주한프랑스대사관 제공

“한국 문학은 과거에 깊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 전쟁의 공허, 분단의 폭력에서 형성된 한(恨)의 정서는 현대 사회에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폭력성 위에 도시화와 출세 지향의 욕망으로 가득한 세계, 개인이 더 이상 지향점을 찾지 못하는 사회의 가혹함이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이 비극은 한국 현대 문학의 주요한 주제입니다.”

1일 오후 7시30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교보컨벤션홀에서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의 강연이 열렸다. 대산문화재단, 프랑스대사관 등이 주최하는 ‘2016 교보인문학석강-프랑스 석학 초청 연속 강연’ 세 번째다.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르 클레지오는 소설 ‘황금물고기’ ‘혁명’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2001년 첫 방한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찾은 작가는 2007년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에서 1년간 프랑스 문학과 문화에 대해 강연하며 한국 문인들과도 교류를 이어왔다.

이날 ‘한국, 바람의 문화(Korea, a culture of desires)’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연에서 르 클레지오는 동서양의 고전과 현대 문학작품을 아우르는 방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문학의 근저에서 발견되는 ‘바람(desire)’이라는 주제에 집중했다. 그는 “130년을 이어온 한국과 프랑스의 관계를 되짚어 보며 ‘바람’이라는 말이 떠올랐다”면서 “문학은 전통적으로 사랑에 대한 바람, 무한한 존재에 대한 바람, 이상 세계에 대한 바람 등 다양한 바람을 그려왔다”고 짚었다.

그는 심청전, 바리데기 설화, 허난설헌, 윤동주, 김유정, 황석영, 황지우의 작품에서 ‘바람’이 체제에 대한 항거, 자유를 향한 외침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돼왔음을 지적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인용하며 작가는 “일본 제국주의는 극단적 식민정책을 펼치며 한국의 문화, 언어, 이름까지 말살하려 했다”며 “한국인을 비롯해 많은 민족들이 ‘바람’의 라틴어 어원처럼 별을 잃어버린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르 클레지오는 한국 문학에서 드러난 ‘바람’이 전쟁으로 얼룩진 한반도의 역사와 맞물려 ‘한(恨)’의 정서로 정착했다며 이것이 현대사회에도 치유되지 않고 문학에 반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을 둘로 나눈 동족상잔의 6.25 전쟁은 프랑스어로는 번역할 수 없는 ‘한’과 ‘정(情)’ 사이의 어떤 감정을 형성했다”며 “전쟁의 경험과 경제적 난폭함이 한국 문학에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작가는 이청준 ‘예언자’, 김애란 ‘나는 편의점에 간다’와 ‘달려라 아비’를 예로 들며 이 작품들이 “인간과 현실의 부정교합이 한국 문학의 주제임을 잘 보여준다”면서 김기덕과 박찬욱 영화의 잔인한 측면도 같은 선상에 있다고 풀이했다.

최근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르 클레지오는 “2007년 이화여대 재직 당시 한강 작가를 만나 한국문학 속에 있는 ‘한’과 ‘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며 “그때 작가는 자신이 ‘한’의 시대를 벗어난 세대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강 작가의 ‘바람이 분다, 가라’가 “한국의 오랜 감정인 한을 뒤로하고 내밀한 소통의 세계, 현대사회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연은 현대사회에서 양국의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란 질문으로 마무리됐다.

“문화가 뒤섞여 정체성을 잃고 경제 위기에 시달리는 작금의 세계에서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문학이 더 조화롭고 긴밀히 연결된 미래를 건설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문학은 위대한 가치의 역사적 유산, 그 자체일 뿐 아니라 언어의 창조를 통해 예술에서 민족주의라는 위험한 환상을 극복하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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