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 부동산 관리가 주업무인 미국 중앙정부 부처에서 1992년 업무공간이 부족한 다른 부처 요청으로 민간 건물을 임대했다. 건물 구조가 공공 목적에 적당하지 않아 400억원 가량을 들여 공사를 한 뒤 20년 장기 임대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임대 기간이 만료하자, 2012년에는 최초 계약조건에 포함됐던 ‘매수 청구권’을 행사해 1,800억원을 주고 건물을 사들였다. 하지만 92년 당시 그 건물을 구입했다면 1,200억원에 살 수 있었던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0년이 지나버려 책임소재를 가릴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이 부처의 안이한 판단으로 20년간 1,200억원이 넘는 세금이 임대료로 낭비됐다.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른 부처는 미국 총무청(GSA)이다. 민간 임대건물의 관리비용(24달러/평방피트)이 소유 건물(5.77달러/평방피트)의 6배에 달하는데도 관리가 편하다는 임대를 선호하는 미 총무청을 향한 불만과 비난이 최근 워싱턴 정가의 화두가 되고 있다.
비슷한 유형의 낭비는 미국 수도 워싱턴DC 곳곳에서 발견된다. 업무 효율을 이유로 민간 빌딩을 임대해 나간 관청이 쓰던 구 청사 건물이 10년 가까이 방치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농무부가 2007년 이후 비워 놓은 ‘코튼 어넥스’다. 워싱턴 한복판 ‘내셔널 몰’ 인근 12번가에 위치한 이 건물은 1936년 지어진 뒤 71년 동안 농무부가 사용했다. 11만8,000 평방피트(10,962㎡) 부지의 6층 건물로 땅값만 500억원(4,800만달러)에 달하는데, 건물 관리를 책임진 GSA는 2016년 5월 현재까지 비워두고 있다. 민간 매각에 앞서 다른 연방 부처를 상대로 입주 희망 여부를 조사하는 등 허송세월을 하다가 비난이 거세지자 최근에야 민간 매각을 확정했다.
미 연방의회에서 남쪽으로 1.5㎞ 떨어진 L스트리트 49번지에도 현대식 빌딩 사이에 우중충한 벽돌 건물이 눈에 띈다. 1924년 미군 합동참모본부가 수도인 워싱턴DC 방위용 병참시설로 지은 건물이다. 2009년 미 군부가 최종적으로 건물 용도폐기를 선언했지만, 금싸라기 3만2,000평방피트(2,970㎡) 부지 이용계획은 올해 들어서 논의되고 있다. 시설이 워낙 노후하고 안전성 문제로 민간업자가 창고로 이용할 수 없을 정도인데도, 매년 1억원(7만달러) 가량이 유지 보수 비용으로 지출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의 안이한 소유건물 관리 및 임대정책이 심각한 여론 역풍에 직면했다. 한국 돈으로 2경원(19조 달러)이 넘는 국가부채를 진 연방 정부의 안이한 부동산 관리로 매년 최대 80억달러(9조5,000억원)가 낭비되면서, 쓰지도 않으면서 관리하는 부동산을 즉각 매각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회계감사원(GAO)에 따르면 연방정부는 36만1,000개의 건물을 소유 혹은 임대로 사용하고 잇다. 사무실의 총 면적은 33억평방피트(3억㎡ㆍ9.075만평)로 여의도 면적의 100배에 달하는데, 문제는 앞서 소개한 부실 관리 등으로 비어있거나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건물이 전체의 5분의1에 달한다는 점이다. GAO는 총 5만5,000개 건물을 ‘유휴건물’로 분류해 특별관리하고 있는데, 사용되지는 않지만 건물 기능 유지를 위해 연간 17억 달러가 투입되고 있다고 밝혔다.
의회와 시민단체가 파악한 관리 실태는 더욱 심각하다. 우선 유휴건물이 GAO가 추정한 것보다 40% 이상 많은 7만7,000개에 달한다는 주장이다. 2014년 은퇴한 톰 코번(공화ㆍ와이오밍) 전 상원의원은 “정부 소유 건물 매각에 대한 과잉 규제 때문에 쓸모 없어진 부동산이라도 민간 매각까지 10년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에 따른 예산낭비 규모는 연간 80억달러에 달한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정부의 부동산 관리 난맥상은 시대에 뒤떨어진 관리 체계와 정치적 명분에 집착하는 의회의 비 협조 때문이다. 미국 정부의 예산 집행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정부낭비감시시민연합’의 톰 샤츠 대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 백악관 주인이 바뀔 때마다 연방정부 소유 ‘유휴건물’ 신속하게 처분하겠다는 다짐이 나오지만, 40년 넘은 각종 ‘레드 테이프’를 뚫지 못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미국 시민단체는 연방정부 ‘유휴건물’이 3~4중의 보호막 속에 놓여 있다고 분석한다. 1차 보호막은 1949년 제정된 미국의 연방부동산관리법이다. 이 법은 한국과 달리 미국 연방기관의 자체적인 부동산 매각을 금지하고, 반드시 GSA를 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유휴시설을 민간에 매각하기 전에 반드시 세 단계의 심의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1차로 다른 연방정부 기구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2차와 3차로 각각 ▦주 정부ㆍ지방정부 이전이나 ▦비영리기관 이전 방안을 필수적으로 모색토록 하고 있다.
1966년과 69년, 87년 의회가 각각의 명분 때문에 만든 법들도 장애물이다. 국가사적지보존법(66년)에 따라 건축연도가 오래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정부 건물의 경우 매각 전에 관련 시민단체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국가환경보호법(69년)은 부동산 처분 전 사전 환경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으며, 87년 만들어는 ‘노숙자 지원법’은 해당 정부건물에 대해 노숙자 지원 시민단체가 사용을 원하는지를 점검하도록 하고 있다.
이들 법률은 모두 재정이 비교적 넉넉하던 시기에 정부 소유건물의 공익성을 높이려는 취지로 제정됐지만, 효과는 없고 결과적으로 한 푼의 예산확보가 아쉬운 시기에 유휴시설의 신속한 매각을 가로막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로 GAO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사막이나 험준한 지형에 있기 때문에 애초부터 민간에 넘길 수 없는 군기지 건물이라도 법이 정한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민간 매각에 10년 가까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다 보니 2014년 민간 매각대상으로 지정된 1만여 개 건물 가운데 실제로 매각이 이뤄진 건물은 122건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쯤 되자 114대(2015~2016년) 하원에서도 정부가 특별히 지정한 유휴건물에 대해서는 공익성 심사를 면제, 민간 매각을 촉진시키는 법률안이 3건이나 제기됐으나 본회의 상정도 되지 않고 있다. 113대 의회에서 폴 라이언(공화ㆍ위스콘신) 현 하원의장이 관련 입법을 추진했는데도 상원에서 민주당 반대로 무산된 전례가 이번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워싱턴=조철환특파원 chch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