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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미스코리아 60년

입력
2016.06.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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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4월 6일 한국일보 1면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알리는 사고가 실렸다. 그 해 7월 미국에서 열리는 미스유니버스에 참가할 한국 대표를 선발하는 대회였다. 응모자격은 ‘만 18세 이상 28세까지의 흥행단체 또는 접객업소에 종사한 적이 없는 미혼여성’. 5월 19일 명동시립극장에서 열린 결선에선 전국 57명의 후보 중 박현옥(당시 23세)씨가 미스코리아에 당선됐다. 박씨에겐 30만환의 상금과 양단 치마저고리 한 감, 은수저 한 벌, OB시날코(청량음료) 한 상자, 옥당목 한 필 등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 집안에만 갇혀 있던 여성들이 수영복을 입고 대중에게 몸매를 드러내는 일은 가히 문화사적 혁명이었다. “혼인 길이 막힌다”며 참가를 막는 부모도 많았다. 그럼에도 미스코리아는 전쟁 직후 가난에 신음하던 국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은 ‘국민아이돌’이자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이 미미했던 한국을 널리 알리는 민간외교관이었다. 2년 뒤 3회 대회에서 민주당정부 각료였던 오위영 국회의원의 딸 현주(당시 20세ㆍ이화여대 불문과2)씨가 당선되면서 상류층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입상자들은 광화문에서 카 퍼레이드를 펼치고 대통령을 접견하는 등 최고 예우를 받았다.

▦ 사흘 전 미스코리아 광주ㆍ전남 선발대회 심사위원을 맡아 후보 32명을 인터뷰했다. 미용실 원장의 권유로 참가했거나 연예계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여성은 드물었다.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미스코리아가 한국사회에 긍정적 에너지를 전달하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장애인시설에서 봉사 중인데, 미스코리아 경력이 장애인 돕기 모금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참가했다.” “입상 여부를 떠나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지닌 친구들을 사귀게 돼 행복하다.” “용기 내어 도전한 오늘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다.” “경쟁보다 추억을 쌓고 싶다.”

▦ 미스코리아가 올해 60회 생일(7월 8일)이다. 다양한 영역에서 국제교류가 활발해지고 온갖 오디션이 범람하면서 국가적 이벤트였던 미스코리아 위상도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한류의 원조’로 60년 동안 화장품 구두 패션 등 국내 뷰티산업에 미친 긍정적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요즘도 한류의 대표 콘텐츠인 미스코리아를 향해 해외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어려운 시절 국민들의 꿈과 희망을 키워온 60년 전통의 미스코리아가 한국 뷰티산업의 총아로 새롭게 자리매김할 날이 머지않았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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