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전속이 기록한 한ㆍ미 대통령 사진 분석

사진= 청와대 페이스북ㆍ백악관 웹사이트(Pete Souza)
백악관 직원 가족인 5살짜리 꼬마가 대통령의 헤어스타일을 궁금해 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허리를 90도로 숙여주고 있다. Pete Souza the White House
오바마와 함께 쌀국수를 먹었던 유명 셰프 앤서니 부르뎅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지난주 베트남의 허름한 식당에서 3달러짜리 쌀국수를 먹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이 화제가 됐다. 등받이 없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은 미국 대통령의 소박한 식사 장면은 SNS를 통해 퍼지면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연출된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의 사진은 인스타그램 등에서 수십만 개의 ‘좋아요’를 얻으며 보란 듯이 흥행에 성공했다. 왜들 오바마 사진에 열광하는가.

소탈하고 인간적인 그의 사진은 공개될 때마다 반향을 일으켰다. 백악관 청소부와 주먹 인사를 나누고 어린 아이가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게 고개를 숙여주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감동보다 부러움이 앞선다. 사진을 촬영한 백악관 전속사진사(이하 전속) 피트 수자(Pete Souza)는 대통령이 참모진과 회의하는 모습이나 연설문을 검토하는 모습, 다리를 꼰 채 통화하는 모습, 초조하게 법안 통과를 기다리는 모습, 영부인과 춤을 추는 모습, 그의 애견들, 파티와 음식, 초대 가수 등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일을 기록한다. 매월 수천 장의 사진이 기록으로 남고 그중 일부가 세상에 공개된다.

오바마 사진 공개 때마다 큰 반향

우리는 어떨까. 청와대 전속이 촬영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된 사진들은 놀라울 정도로 엇비슷하다. 최근 2개월치만 보더라도 마치 공식에 대입한 듯 몇 가지 유형이 무한 반복된다. 사진 속 대통령은 항상 회의를 주재하거나 악수를 하고 박수를 친다. 배경에 걸린 행사명과 의상만 바뀔 뿐 매번 비슷하다. 청와대에서 일하는 청소부나 요리사, 비서진과의 자연스런 소통이나 파격적인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통령의 일상 역시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유형 1> 왼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제 33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4.21), 경제5단체장 초청 경제외교 성과확산을 위한 토론회(5.11), 제1차 과학기술전략회의(5.12),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5.18).
<유형 2> 왼쪽부터 경제5단체초청경제외교성과확산을위한토론회(5.11), 제1차과학기술전략회의(5.12), 바이오산업생태계탄소자원화발전전략보고회(4.21).
<유형 3>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제 35회스승의날기념식(5. 13), 민주평통 해외자문위원과의 통일대화(5. 17), 한 에티오피아 비즈니스포럼(5. 27), 대한민국 중소기업인 대회(5. 20).
<유형 4> 왼쪽부터 제7회 아시안리더십 컨퍼런스(5. 17), 제35회 스승의날 기념식(5. 13), 한 에티오피아 비즈니스 포럼(5. 27).
<유형 5>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제7회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5.17), 우간다 동포 대표 접견(5. 28), 한식 문화관 방문 및 제5차 문화융성위원회회의(4. 11), 아프리카 연합방문 및 특별 연설(5. 27).

박진규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 사진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을 "평소 우리 대통령에게서 느껴 온 권위와 불통 이미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친근하고 인간적인 오바마의 모습에서 호감을 느끼기 때문" 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나와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 것 같은 대통령보다 나와 별 차이 없이 행동하는 소탈한 대통령에게 내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기대감을 더 갖게 된다”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이 따뜻한 스킨십과 친근한 제스처로 국민과 소통하는 ‘오바마 같은 사진’이 우리는 왜 없을까. 역대 청와대 전속과 미국 언론에 공개된 백악관 전속의 이야기를 토대로 그 이유를 들여다 봤다.

“대통령 권위ㆍ불통 이미지 탓
소탈한 오바마에 호감 느끼는 것”
2015. 10. 8 Pete Souza the White House
2016. 5. 10 Pete Souza the White House
#1. 기록 보다 보도용

피트 수자의 스케줄은 곧 대통령의 스케줄이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회의든 심각한 대화 장면이든,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이든 놓치지 않는다. 대통령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피트 수자는 지난해 팟캐스트 ‘The Photo Brigade’에 출연해 “나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좋은 사진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도 전속의 임무를 방해하지 못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셔널 지오그래픽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기록하고 있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라며 “그러나 피트는 내가 힘들 때나 행복할 때를 항상 지켜봐 왔기에 가족이나 마찬가지” 라고 말했다.

피트 수자 “내 의무는 사진으로 역사 기록”
오바마 “피트는 가족과 마찬가지”

기록을 전속의 가장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는 미국과 달리 우리는 보도 혹은 대국민 홍보용 사진 촬영을 중시한다. 과거 청와대를 출입한 사진기자 A씨는 “전속이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지 못하는 것은 대통령의 좋은 모습만 찍고 보여 주길 원하는 청와대 분위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기자 B씨는 “전속인데도 출입기자와 동선이 거의 같다 보니 특별한 사진이 나올 수가 없다”라고 말했다. A기자는 또, “대통령이 휴식을 취하거나 산책을 하는 등 일상까지도 기록 차원에서 남겨 둬야 한다. 공개 여부는 나중 문제”라고 지적했다.

2015. 9. 22 Pete Souza the White House
#2. 경직된 시스템

미국의 대통령 경호는 유난스럽다. 해외 순방국까지 자동 화기로 중무장한 특별 경호팀이 따르며 ‘미국식’ 경호를 고집한다. 그러나 전속에 대한 통제는 없다. 전속은 대통령의 앞과 옆, 뒤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는 데 집중한다. 이미 50여년의 역사를 지닌 백악관의 전통이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전속 에릭 드레이퍼(Eric Draper)는 911 테러 직후 대통령 전용기 내에서의 긴박했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대통령과 나와의 거리는 몇 인치 안 될 정도로 가까웠고 나는 최대한 ‘없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대통령도 마치 내가 투명인간인 것처럼 행동했다.”

반면 청와대 전속은 대통령 사진을 마음대로 촬영할 수 없다. 촬영 일정은 홍보수석실이나 비서실에서 결정해 통보하고 특별한 경우 외엔 출입기자단과 함께 행사 초반 짧은 시간 내에 촬영을 끝내야 한다. 일정 거리 안으로 접근하거나 대통령 뒤쪽에서의 촬영도 제한된다. 한 전속 출신 인사는 “무겁고 단단한 카메라가 흉기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이유인데, 안전도 좋지만 그만큼 전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씁쓸해 했다. 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속이었던 홍성규 작가는 “대통령이 권위적이라서가 아니라 모시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권위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속을 지낸 김용위씨도 “누구든 청와대 시스템에 부딪혀 보면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사진이 나올 수 없는 구조라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인스타그램에서 자동 화기를 담은 묵직한 가방을 들고 베트남에 나타난 대통령 특별 경호팀 사진을 공유하면서 "어디든 대통령이 가는 곳이면 나타난다"라고 소개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대통령의 사진사’ 중 한 장면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 ‘대통령의 사진사’ 중 한 장면
2016. 5. 20 Pete Souza the White House
2015. 10. 15 Pete Souza the White House
#3. 너무 먼 대통령 집무실

피트 수자의 사무실은 대통령 집무실에서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대통령과의 물리적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돌발적인 상황에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청와대 전속은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별도로 분리된 춘추관(기자실)에서 대기한다. 그마저 혼자서는 이동할 수도 없으며 집무실이 있는 본관을 출입할 때마다 비서실과 경호실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4. 계속 가리기만 할 것인가

백악관 공식 웹사이트에서는 대통령과 그 가족, 부통령의 사진 5,000여장을 볼 수 있다. 2009년부터 전속이 찍은 이 사진들은 역사적 기록의 의미도 크지만 정권이나 정책 홍보에도 적극 활용된다. 백악관은 기획 취재를 원하는 기자에게도 전속과 동등한 수준의 접근을 허용한다. 대통령의 정돈된 모습만 보여 주길 고집하고 전속마저 접근 자체가 어려운 우리로선 불가능한 파격이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사진기자 C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공개 행사에서 모두 발언을 자주 하는 편이라 취재 시간은 다소 늘었지만 여성 대통령이라는 점 때문인지 촬영 거리가 멀어졌고 취재에 대한 제약도 더 까다로워졌다. 건물 구조와 조명 또한 자연스러운 사진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라고 말했다.

타임 매거진의 켈리 셸 기자가 보도한 포토에세이 '오바마와의 48시간' 중 한 작품. 대통령 전용기 내부에서 미시건 주 의회 의원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있는 대통령의 모습을 촬영했다.
2016. 3. 24 Pete Souza the White House
#5. 대통령 사진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상을 담은 사진은 서거 후에야 공개되며 많은 이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런데 만약 청와대에서 손녀와 자전거를 타고 과자로 장난을 치는 사진을 임기 중에 공개했다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이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속 김용위씨는 “당장 대통령 업무가 장난이냐며 야당과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을 것”이라며 “우리는 현직 대통령 사진을 바라보는 정서가 곱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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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고 연설하는 사진으로 연설 내용보다는 ‘건방지다’는 이미지가 대두되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이 전 대통령은 뒤집힌 태극기를 흔드는 사진, 박근혜 대통령은 소방 호스로 논에 직수를 뿜는 사진 때문에 비난 여론에 시달렸다. 대통령 사진을 합성해 각종 패러디에 악용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김씨는 “그러다 보니 홍보 라인에서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아예 안 찍고 안 보여 주는 쪽으로 굳어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대통령의 사진사(The President’s Photographer)’의 마지막 내레이션에는 우리가 찾는 해답이 담겨 있다. “대중은 피트 수자의 사진을 통해 백악관이라는 동떨어진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곳에서의 환희와 좌절은 어떤 모습인지, 치열함과 평온이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the White House
2015. 10. 21 Pete Souza the White House
2014. 5. 25 Pete Souza the White House
2015. 7. 30 Pete Souza the White House
2016. 1. 29 Pete Souza the White House
2016. 4. 27 Pete Souza the White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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