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56)씨에게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었다. 수년 전 경찰 조사를 받던 중 바지를 벗고 항의했다 공연음란죄 판결을 받고 복역했던 일이 있기 때문이다. 수치심에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지만 A씨는 지난해 6월 다시 공무집행방해죄로 징역을 살다가 가족이 자신의 공연음란죄 복역 사실을 알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여동생이 오빠의 재판과 관련한 민원을 제기하러 서울 한 경찰서를 방문한 자리에서 담당 경찰이 A씨의 음란행위 건을 언급했던 것. A씨는 “경찰의 개인정보 유출 때문에 수감생활 내내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국가인권위원회에 밝혔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유출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인권위가 꾸준히 개선을 권고하고 있으나 인권 침해 사례는 줄지 않고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31일 “최근 수사기관의 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를 구제해 달라며 진정을 내는 민원인이 늘고 있다”며 “피의자 등의 신원을 조회하는 과정에서 혐의와 무관한 과거 전력을 제3자에게 노출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사기 혐의로 한 지방검찰청에서 조사를 받던 B(62)씨 역시 고소인과 대질 도중 조사관이 사문서 위조와 전과 등 과거 범죄 경력을 폭로해 피해를 봤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B씨는 “당시 고소인과 원만한 합의를 위해 자리를 마련했는데 조사관이 뜬금없이 전과 기록을 말하는 바람에 합의가 무산됐다”고 토로했다.
인권위는 검찰과 경찰 규정을 근거로 A씨와 B씨의 진정 건 모두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청 훈령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은 부당한 개인정보 취득 및 사생활 침해 금지 등을 명시하고 있다. 법무부 훈령 ‘인권보호수사준칙’에도 수사 전 과정에서 관계인의 사생활 보호를 규정한 내용이 나와 있다.
그러나 인권위 의견은 권고에 그쳐 강제성이 없는 데다 수사기관의 인권 감수성도 떨어져 인권 침해가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개인정보 조회ㆍ유출로 처분을 받은 경찰 사례는 2013년 54건, 2014년 70건, 지난해 60건 등으로 줄지 않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수사관은 “수사 효율을 높일 목적으로 피의자의 과거 기록을 들춰 압박하는 등 잘못된 관행이 남아 있다”며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수사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찰과 경찰은 국민의 민감한 정보를 취급하는 권력 집단인 만큼 수사과정에서 파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 요소를 면밀히 살펴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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