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6월 1일

“시대의 열정을 디자인한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 1936~2008)이 8년 전 오늘(6월 1일) 별세했다.
프랑스 식민지 알제리에서 태어난 그는 병약하고 내성적이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종이 인형 만드는 걸 좋아했고,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에게 옷을 만들어주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14세 무렵 우연히 본 연극에서 극 자체가 아니라 무대와 의상에 매료돼 디자이너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1953년, 17세이던 그는 국제양모사무국이 주최한 디자인 컨테스트에 참가해 드레스 부문 3등을 차지했고, 이듬해 1등을 한다. 그를 눈 여겨 본 패션지 ‘보그’ 편집장 미셸 브뤼노프가 그를 크리스찬 디오르에게 소개했다는데, 디오르 역시 컨테스트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 19세에 디오르의 조수가 된 그는 2년 뒤(1957년) 타계한 디올의 유언에 따라 파리 최고ㆍ최대의 디자인그룹 ‘디올하우스’의 수석디자이너가 됐다.
그가 알제리 독립전쟁에 징집된 건 3년 뒤인 1960년이었다. 이미 두 차례 ‘디올하우스’의 영향력으로 징집 연기를 받은 그는 어쩔 수 없이 전장에 끌려갔고, 불과 20일 만에 군 병원에 입원한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이었다. 그는 군 병원에 이송돼 결코 섬세하지 않았을 진정제 처방과 전기충격 요법 등을 받는다. 그 일로 디올에서도 해고 당한다. 훗날 그는 자신의 약물 중독과 정신적 문제가 군대와 군 병원에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를 구원한 건 연인이자 사업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1930~)였다. 그의 도움으로 62년 자신의 이름을 건 오토쿠튀르를 연 생로랑은 파리 패션의 금기를 허물어가기 시작했다.
여성 이브닝웨어 ‘르 스모킹(Le Smocking)’을 발표한 건 1966년이었다. 화려한 드레스 대신 턱시도와 바지, 느슨하게 매달린 넥타이를 결합한 여성 파티 정장은 60년대 성 해방의 시대를 선도한 혁명적 패션이었다. 68년의 누드룩(시스루드레스), 70년대의 히피룩 …. 그는 디자이너 기성복(프레타포르테)라인을 처음 연 디자이너였고,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서 생존 작가로는 첫 전시를 연 패션 디자이너였다. 베르제와의 연애는 76년 끝이 났지만, 둘은 사업 파트너로 평생 대체로 사이 좋게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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